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잠실대교 위에서 플로리스트 체험, 무리한 시도
창업 및 플로리스트 체험 돕는 리버뷰봄 꽃카페 탐방



자. 너희들이 내 손에 망가질 희생양이냐.

네, 선장님!

난 너희 선장이 아냐.
그럼 지금부터, 저 꽃이 내 손에 어떻게 고생하는지 보여주겠다.




그게 그러니까, 22일이다. 서울시 블로거 공동취재 행사에 참석했다. 플로리스트 체험이라는데, 꽃꽂이라고 하면 금방 알아차렸을 것을. 잠실대교 위에 선 '리버뷰 봄'에서, 화창한 여름 오전부터, 생생한 꽃들을, 내 손으로 망가뜨려가는 이야가 이 기사의 핵심이다.




이 분이 여기 원장님이다. 리버뷰 봄에 입주한 꽃카페 '여행화가'에서 체험이 이뤄진다. 지금 다듬고 있는 작품. 저게 모범 답안 되겠다.

'여행화가'에 대해 먼저 소개한다. "여성이 행복한 꽃가게"를 이르는 말로, 현재 서울시가 공공기관의 자투리 공간 및 유휴공간을 활용한 점포 창업을 지원하는 첫번째 사례다. 여행화가를 브랜드화시켜 취업, 창업 훈련기관 수료생들을 도울 예정인데 현재 두 개의 점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기가 2호점이다.

자. 다시. 원장님의 손에서 창조되는 신세계를 봅니다. 그래도 저 예쁜 투명 화분이라면 나라도 뭔가 보정을 받을 텐데, 어찌된 건지 내것이 없단다. 덕분에 변명 거리는 하나 늘었지만 마냥 서운하기만 한데.

"기사 어떻게 쓰나 한번 봐요."

저기 위에, 화장기 없는 생얼에 안경... 그러고 보니 모두 안경 착용 중이네. 그러니까 맨 왼쪽 분, 신미선 담당자한테 미리 밝혀뒀다.
다음번에도 대접이 섭섭하면 보라미랑님 데세랄 빌려와선 확 크롭해 게재할까보다.



꽃을 아무거나 잡히는대로 가져온 뒤에, 저 회색빛 불투명 화분 위에 맨 처음 장미 꽃 한 송이를 꽂았다. 시작이 반이다. 벌써 반을 했다. 심상치 않은 전개다. 아무래도 이거 보더니 신미선 담당자가 팍 웃더... 가만 있어봐라. 크롭 프로그램이 어딨더라.

하여튼. '논 위에 심은 장미' 완성.
자. 이제 마음껏 망가뜨려 주마. 나는 야성의 감으로 희생양들을 손대기 시작하는데.

메인으로는 해바라기를 선택했다. 동경하는 대상을 한결같이 바라보는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기사, 홍장미가 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손대지 않는, 꽃이 아닌 뭔가 다른 것들을 가져다가 마구 꾸며봤다. 야생화의 생동감을 그대로 재현한다는게 컨셉이다.

말로 하니 엄청 근사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고. 이내 참가자들 중에 한가한 분들은 내 작업을 찍기 시작한다. 남자라곤 딱 한명 들어와서리 빚어내는 오묘한 꽃꽂이가 웃음꽃을 피운다.  



완성본. 플로리스트로 거듭난 권 기자의 1호작이다.

어라? 이렇게 보니 또 괜찮아 보인다. 그럼 원장님의 평가는?

"생태학적으로는 이게 맞아요. 예술성은 없지만..."

다른거 안 들어온다. '예술성은 없지만' 그 대목만 반복된다. 영 맘에 안들었는지 다른 사람들 거는 별로 손 안대는 것 같더니 내 것만 한참을 다시 리뉴얼. 이후로 빈정상해 촬영은 올 스톱이요. 더이상은 내 작품이 아니니까.




그렇게 한참을 원장님이 다시 손 본, 더 이상은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작품, 뭐 그래도 워낙에 벌여놓은 스케일이 크다보니 그 모습이 많이 남아 있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참가작들이 한데 모였다. 확실히, 여러 의미로 튄다. 내 것은.

다시 말하지만, 나도 유리화분이었다면 분명 폭발적인 감성으로 훨 나은 손맛을 보여줬을 거라고.

원래대로라면 재료값 2만원치 내야 한다는데 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그냥 완성품을 각자 들고 귀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들고가기도 뭣하고 (이미 내 것이라고 할 수 없기도 하고) 해서 그냥 놔두고 왔다. 신미선 담당자는 다른 한 분이 놓고 가는 유리화분을 얻어가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던데, 내 것도 같이 가져가라 했더니 안색이 싹 변하면서 거절하는 거다. 다음 블로거데이 행사 때 날 초대한다면 그 땐 내 손에 들린 카메라가 데세랄인지 어떤지 확인하는 게 신변에 이로울 거예요.

결론. 역시 손감각 무딘 총각 저널리스트한테 플로리스트는 무리요. (그리고 고백하는데 난 처음 '플로리스트' 한번 듣고선 플룻 배우는 줄 알았다)
혹 관심이 있어 유료로라도 플로리스트 체험을 하고 싶다거나, '여행화가' 창업에 대해 문의하고 싶다면 잠실대교 위에 세워진 리버뷰 봄을 찾도록.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열려있다. 연락처는 02-415-4952. 홈페이지는 (www.wfsshop-f.net) 되겠다.



TIP ! 간편 비닐 꽃병 만들기



하나 더 배웠다. 즉석에서 만드는 비닐 꽃병이다. 사실 손재주가 필요해서 그렇지(결국 어렵다는 말이다) 원리는 쉽다. 비닐 물병에다 담을 꽃다발을 철사로 감아 고정한다. 그리고 물병을 만드는데 우선, 물이 담긴 1.5리터들이 페트병을 준비하라. 그리고 페트병을 비닐위에 올려놔라. 페트병을 감싸듯 비닐을 마름모 꼴로 접어 올려, 뾰족하게 올라온 곳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접듯이 안으로 밀어 모양을 만든다. (듣는 사람은 알아듣기 힘들겠지만서도 설명은 참 쉽게도 써요)
숙련되지 않은 이상 혼자서 하기엔 어려운 작업이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면 좋다. 여기까지 했으면 한 사람은 말아놓은 비닐의 허리께(사진에 '금색 빵끈'이 묶여 있는 부근)를 잡아 풀리지 않도록 하고, 또 한사람은 페트병을 슬쩍 꺼내 든 뒤 꽃다발을 그 자리에 옮겨놔라. 물론 여기까지도 비닐을 잡은 사람은 이것이 풀리지 않게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럼 이제 페트병에 들어 있는 물을 적당량 꽃이 담긴 비닐 안으로 담는다. 일정량 이상 부어야 꽃다발의 중심이 잡힌다. 다 부었으면 사진에 보이듯 '금색 빵끈'을 비닐 허리에다 칭칭 감는다. 그럼 완성. 어지간해선 넘어지지 않는 즉석 비닐 꽃병 탄생이다. 사진처럼 리본을 묶어주면 더 좋고.

그래 나도 안다. 제대로 따라하기 힘든 수작업, 가이드랍시고 쉽게 해낼거마냥 글로 풀어다 쉭쉭 써 놓은 것처럼 얄미운것도 없지. 하다못해 부족한 부분은 여러분이 응용하고 보완해서 어떻게든 커스텀화 하면 좋겠다. 진정 머리 좋은 사람은 개떡같이 말해놔도 찰떡같이 알아듣더라. 물론, 나한텐 없는 재능이지.


ⓒ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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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소개] 4천원이면 배터지게 먹는 세숫대야 냉면, 리필도 무제한 공짜
부천 은행골 천하장사 냉면집




"맜있게 드세요."

앞에 음식이 놓이자 잠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잠시 후, 이렇게 물을 뻔 했다.

"주인장, 이거 사람이 먹는 그릇이 맞는 거야?"




피판(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취재 도중 재미있는 맛집 하나를 건졌다. 맛이야 호불호가 갈리니 소개가 쉽지 않다지만, 양이라면야 그만큼 전달이 쉬운 요소도 없는 법이지. 양에 있어선 두 말이 필요없다. 배고픈자들아, 우리가 반드시 체크해야 할 포인트를 찾았다.

피판 행사장 중 하나인 고려호텔. 난 시사실 자리를 예약한 뒤 잠시 호텔 앞 큰길로 나섰다. 이미 시간은 점심때가 훨씬 지난 오후 4시 반. 그러고보니 이날, 난 한 끼도 먹지 않았네. 배고픈 직업이지.

뭔가 먹어야 겠다는 생존본능으로 식당을 살피게 됐다. 언제나처럼 '값싸고 양많은' 집 어디없나 하면서.
더운 날 마침 냉면집이 보이는 거였다. 안을 기웃거리며 차림표를 확인했다. 가격 4천원. 가격 착하고. 무엇보다 '사리공짜'란 안내가 발길을 잡았다. 굶주린 자에게 최고의 서비스인 리필 공짜가 아니던가. 멀리 가기도 그렇고 해서 거리낌없이 들어가 자릴 잡았다.
 



정말로 사리가 공짜냐고 확인부터 했다. 처음부터 사리 많이 좀 달라고 했더니 "백두를 주겠다"고 한다. 누가 천하장사 아니랄까봐 백두, 한라, 금강으로 대 중 소를 나눈다. 대자냐 소자냐 따질 거 없이 가격은 똑같다. 당연히 많은 걸로 고른다.

잠시 후 커다란 세숫대야가 나오는데 그게 저거인 거다. 기대 이상이다.




비교 대상이 필요할 거 같아 쿠키폰을 꺼내 나란히 찍어 봤다. 눈에 확 안 들어오면 그냥 동동 뜬 달걀을 주시하라. 달걀이 저렇게 작아보이는 냉면그릇이면 확실히 왕세숫대야가 맞다. 나중에 보여줄거지만 저 냉면그릇, 위에다 젓가락을 얹어 놓는걸 불허한다. 그냥 들어가기 때문이다. 왕세숫대야 냉면이야 여러번 받아봤지만 저렇게 가득 담아주는 건 본 적이 없다. 리필은 거기서 그냥 잊어버렸다.

종업원이 "남기면 벌금"이라고 웃는다. 반기는 바다. 이래뵈도 하루 종일 굶고 첫 끼니를 잇는 나라고. 못 먹을 건 뭐냐.




그래도 많은 건 많은거다. 사리를 들어올려봤더니 그저 육수만 가득 담긴게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릇을 살짝 들어봤다. 저울질을 할 수 없어 그런데, 어째 내 가방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경량형 무장이라지만 그래도 넷북에 하이엔드 카메라가 들어찬 가방은 4킬로쯤 나간다. 역시나 내 착각이겠지?

......

진짜면 이거 먹는 순간 내 몸무게가 4킬로 더 나간다는 거야 뭐야.  




'나는 밥을 먹었다.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던 어느 라디오드라마의 대본이 떠오른다. 음식 먹던 와중에 왜 저 대목이 떠오르는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한 5분 쯤 열심히 먹었나. 아직도 절반 이상 남은 그 때, 갑자기 전화가 걸려 온다. 겉보기보단 질긴 사리를 끊으며 받아들었더니 시사실이다. 자리 비었단다. 10분안에 달려가겠다고 했다. 덕분에 시간 제한까지 걸려버렸네. 대체 뭐냐, 타임리미트에 질량의 압박에. 많이 먹기 대회 나온 것도 아니고.

종일 굶은 탓에 그릇은 무리없이 비어간다. 그러나, 역시 고비가 찾아온다. 거의 다 먹었다 싶었을 때 뱃 속이 "너 좀 심하다"고 말을 걸어왔다. 냉면 매니아로서 간만의 향연이지만 그래도 이건 역시 심했나. 막판엔 일종의 의무감 비슷한 오기로 그릇을 비우는 것이었다.




옛다, 다 비운 인증샷. 먹는거 마다하고 벌금 낼 내가 아니지.
내가 뭐랬어 젓가락이 들어간다니까.

헌데 계산하고자 다가가니 "벌금 없어"라고 한다.

"아까 한 말은 뭐였샤?"
"그냥, 장난이셔."

뭐, 이러나 저러나 음식은 싹 비우는 사람이지만 이건 장난이 장난이 아니고.

대개의 사람들은 한라, 즉 중자가 진리라고 한다. 그러나 한창 먹을 나이의 남자들은 백두 먹고도 리필을 외친다고. 물론 약속대로 리필은 추가 요금 없다. 다만, 써놓은 대로 양 많다고 한 그릇 시켜 둘이서 나눠 먹는 건 용납못한다고 하니 두당 4천원의 계율은 지키셔.

그럼 이제 남은 건 맛 품평이로구나. 니 말 듣고 찾았다가 맛이 어쨌니 저쨌니 할까봐 확실하게 말해둔다. 우린 먼저 가격대를 살필 필요가 있다. 간판에다 '냉면전문'이라고는 해놨다지만 그래도, 4천원 짜리에 7,8천원에 달하는 냉면전문점의 육수나 면을 기대하는 건 역시나 무리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 가격대에선 면 위에 고기 올라가는 걸 보기 어려워졌는데, 역시 여기서도 그렇다.

냉면에서 엔트리급이라 할 수 있는 저 가격대를 감안한다면 무리가 없다. 역시나 최대 강점은 저 가격에 냉면이 무한대로 솟아나는 리필 신공과 처음부터 세숫대야에 코박고 죽을수 있도록 돕는 질량의 압박이고. 육수는 동치미 등 야채로 낸 맛이 강하고 고기를 우려낸 맛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 얼음을 다량으로 띄워 차가운 맛을 유지하는 센스는 반갑다. 더운날 미지근한 냉면 먹는 것도 고욕이니까.
메밀 반죽의 사리는 일단 끈끈하다. 그렇다고 해서 고구마 전분으로 엄청난 탄력을 자랑하는 정통파 함흥냉면이나 특유의 끊는 느낌이 좋은 평양냉면 명가의 수준을 기대하진 말도록. 고급 냉면집의 것을 기대하지 마라고 한 이유 중 하나다.
재밌는 것은 아주 차갑게 내놓은 냉면임에도, 먹고 나면 속 안에서 차가운 기운이 아니라 따뜻한 기가 올라온다는 점이다. 더위를 피하면서도 뭔가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맘에 들었다. 여름에 쉽게 지치고 냉면 한그릇 먹자니 사리까지 염두하면 지갑이 가벼운 그대에겐 나름 자신있게 소개하는 집이다.


은행골 천하장사 냉면
가격 전메뉴 4천원 통일
특징 사리 무한리필, 사람먹으라고 준건지 의문인 백두급 냉면
냉면 외 만두, 칼국수 등 병행
위치 부천 고려호텔 인근. 호텔 정문 앞 큰길 우측. ]


ⓒ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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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부산역 새 명물, 음악분수대 레이저쇼



   
 
   
 

"2분 뒤에 쇼 시작하거든요?"

관리관 하나가 다가오더니만 나더러 물러서라 한다. 일전엔 본 적 없는 대형 조형물을 찍어대다 그제사 "아 이게 보이는것만이 다가 아니구나"하며 물러섰다.  
 
30일 밤 8시 1분. 안내방송에서 밝힌것보다 1분 더 지나 오색빛깔의 물보라가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부산역 광장의 분수는 이미 40년 전부터 존재했다. 그 자리에서 귀향객과 타향민들을 맞이하며 물과 바다의 도시임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던 것을 지난해 5월 단장, 지난 5월 개장했으니 1년만의 일이다.

분수노즐 462개, 최대 분사 높이는 20미터. 분수대 전면 워터스크린은 레이저쇼 연출이 가능하다.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13시간 동안에 휴식과 쇼타임을 번갈아 갖는다. 이날 8시에 시작한 쇼는 30분간 이뤄졌다.

   
 
   
 

30분동안 10곡 내외의 국내외 가요 및 연주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빛과 물의 볼거리는 잠시 더위를 잊게 했다. KTX를 비롯 새마을, 무궁화 차편의 경부선 최후 종착지가 선사하는 눈요기다. 라스트곡에서 "특급사랑이야~ 짠짠" 할 때 스크린에 '짠'이 튀어나오니 박장대소가 터졌다.

 

   
 
   
 

언젠가부터 부산의 축제는 불꽃을 중요 아이템으로 삼기 시작했다. 기존의 '바다'와 조합할 소재로 동서고금의 자극적인 시각 마술을 가져와 공감각적 즐길거리를 만드는 것. 여름 최대축제 중 하나인 부산바다축제, 봄의 어방축제(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5177)는 그 대표적 예다. 가을의 부산불꽃축제는 작년 신종플루 공포로 줄줄이 지역축제가 취소되는 중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케이스.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6840) 부산국제영화제의 축포 성격으로 연계되는 이 행사는 작년 여러 여파로 전야제가 취소, 축소되긴 했으나 그래도 본행사는 그대로 이어졌다. 물과 불의 만남을 부산역 분수에서 재연하는 것은 그 같은 축제의 이미지를 부산의 것으로 굳히려는 시도일지 모르겠다.

 

   
 
   
 

당신이 KTX나, 새마을 혹은 무궁화호를 타고 경부선 남단 종착지인 이곳에 닿는다면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운이 좋다면 택시를 잡거나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편을 찾는 와중에 당신을 위한 환영행사가 광장 한가운데서 쏟아질수도 있으니.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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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의 칵테일] 15. 갓마더, "엄마 날 구해줘요"





때는 5월말.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여러모로 쫓아다닐 곳이 있었다. 선거란 정치쪽을 건드리는 기자에 있어 정말이지 무궁무진한 지면을 할애해주는 특수다. 사진기 메모리카드를 빼어다 필름 훑어보듯 주욱 돌아보면 셔터를 많이도 눌렀다.

그러고보니 칵테일 이야기 하나가 번외편 마냥 끼어 있다. 이건 취재가 끝나고, 지인과 한잔 할 때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에에... 보자.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이해찬 전 총리가 파워블로거들을 소집해 간담회를 가졌을 때다. (http://kwon.newsboy.kr/1691) 끝나고 나서 이글루스의 디지털 괴물 자그니 님, 그리고 김진애 의원실의 신우석 보좌관과 한잔 하게 됐다. 미리 말하는데, 진짜로 딱 한잔씩만 했다. 그러나 그 한 잔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갓 마더. 이번에 소개할 황금빛의 칵테일이다. 얼음의 실버와 음료의 골드가 한데 모여 럭셔리한 광채를 뿜어낸다. 외관에 있어서는 어떤 칵테일보다 비싸 보이는 한 잔. 가격이... 8000원? 9000원? 아니 1만원이었나? 꽤나 얼큰했던 터라 기억이 가물하다. 8000원에서 1만원 사이로 하자. 부정확하나마 아는대로 다 밝히는게 자신없게 콕 찍어 단정하는것보단 나은 보도렷다.




얻어먹는 것은 무엇이든 맛있는 법이다. 한번도 와 본적 없는 술집, 그러고보면 지상 2층의 플로어도 처음이다. 일전에 돌아다닌 3곳 모두 창 없는 지하였던 반면에 여긴 밤의 네온사인이 어른거린다.
저 황금색 술잔은 알콜에 면역력 없는 이를 바커스의 곁으로 인도한다. 어찌 그리도 강렬한지. 입에 가져다 댈때 진한 박하향이 선봉장으로 찾아오고, 진한 단 맛이 본대로 진군해 온다. 마지막 입에 뗄 대는 강하다 못해 독한 알콜기운이 마무리. 저 한잔에 내 이성은 "정신차려!"를 수없이 외치며 채찍질해 왔다.

여기서 꿀과 벌을 연상한다. 달콤한 꿀, 황금색 젤리, 그리고 톡 쏘는 벌의 침. 이 한 잔에 다 담겼다.




술잔을 저만큼 비우는 것도 벅찰 지경이다. 마취되는 느낌. 차라리 그 기운이 꽤 오래 이어지니 한동안은 편하다. 그러나 졸음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가 자꾸 내 머리를 무겁게 만든다.

"무슨, 독주를 드시나."

신 보좌관이 웃는다. 자그니 님은 기도 안차다고 생각했을 거다. 얼마나 독하냐. 저 빨대를 빼고 직접 입을 대니 어느순간엔 갖다댄 입술조차 얼얼하고, 저 한모금을 머금었던 입안은 치과에서 느끼는 그것마냥 감각이 없다.

지금껏 마시던 칵테일 중 단연 돋보이는 강한 알콜도수. 갓마더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감각과는 전혀 다른 맛. "엄마 나 좀 구해줘"하고 외치게 되어 갓마더는 아니겠지. 절대 이름만 듣고 안심한채 주문하지 마라.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때 소개했던 갓파더(http://kwon.newsboy.kr/1290)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케 한다. 갓파더와 갓마더는 들어가는 술의 종류만 다를 뿐, 나머진 동일한 술로 알려져 있다. 갓파더가 조니워커라면 갓마더는 보드카로 승부한다. 갓파더는 은근히 취해가지만 갓마더는 그럴 여지를 주지 않고 초장부터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갓파더도 꽤 강했지만 이건 그 이상. 술 꽤나 할 거 같은 대부와 대모다.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워낙 세다 보니 그 이름에서 전달되는 것만큼 어른의 맛을 만끽하는데는 더할 나위 없다는거. 다만, 술이 약한 사람이라면 이거 한잔 내려놓고 그냥 돌아갈 생각으로 주문할 것.




잠깐 한 컷. 이 두 사람, 그리고 나. 이 날 꽃피운 이야기는 역시나 세상 돌아가는 것들이다. 앞을 알 수 없는 시국. 쉽게 발담그기 힘든 시류.

혼미한 기분으로 잠시 잊고 싶다면 갓마더는 훌륭한 선택이다. 주당이 아니라면 한모금 한모금 들이킬 때 여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들을 잊을 수 있다. 돌아갈 땐 몸을 가누는 데 신경쓰느라 역시, 침대에 몸을 뉠 때까지 머리를 비울 수 있다. 단, 다른 칵테일보다 조금 단가가 비싼 건 감수할 것.

추신. 멋진 한잔을 사 준 신우석 보좌관에게 감사.


갓마더
종로 주점 70's radio
가격 8천~만원
레시피 - 보드카, 아마레또, 물과 얼음과 비워야 할 꽉 찬 머리
촌평 - 뒤끝이 없어 안심. 그래도 꽤나 독하니 주의할 것. 박하향과 단 맛 또한 강렬하기 그지 없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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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인터뷰] "바이크 타는 착한 뇨자" 김맴밥
말만한 처자가 말만한 바이크를 타고 말한다, 유별나라 씨




말만한 처자가 말만한 바이크를 타고 말많은 블로그를 운영한다

"바이크를 타고 블로거를 운영하는 여성은 희소하다"는 말에 그녀는 "맞다"고 동의한다. 여성 라이더인 자신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냥저냥"이라고 크게 좋을것도 나쁠것도 없다고 밝혔다.

오늘은 바이크 전문 블로거 김맴밥 님(http://blog.naver.com/zzoka)을 만났다. 본명 유별나라, 만 서른의 포토그래퍼. 이 자리에선 무엇보다 8년차 베테랑 라이더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서울 신촌과 인천을 50CC ST50으로 출퇴근하는 보기드문 여성 라이더.

"50CC로도 서울 인천 정도 장거리는 무난한가 보군요."

"ST50으로 30~40분이면 주파해요. 최고시속 80KM을 넘기고 둘이 타도 70KM 정도? 언덕을 만나도 둘이 탔을 때 65KM정도 나와요." 

바이크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차, 탐나는군.

"생일이 안데르센의 기일"이라는 그녀, "난 카우보이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과 생일이 같다"고 했더니 "부럽다"고 단번에 알아듣는다. 알고보니 만화와 관련된 전공자다. 본인은 마이너에 가깝다고 하는데, 여튼 매니악한 매력도가 한단계 상승한다.

"인터뷰 해 본적 있나요."

"처음인데요."

서로 첫경험이다. 이 쪽은 오토바이를 타는 여성을 만나는 게, 저 쪽은 기자나부랭이를 만나서 하는 인터뷰가.

그러고 보니 네이버 블로그 유저는 처음으로 인터뷰 자리에 모신 것 같다. 알고보니 이 밖에도 이글루스, 그리고 맨 처음 했던 싸이월드 등 여러가지의 유저라고. 다만, 지금은 네이버에서만 주로 활동한다고 했다.

"싸이월드 하다가 2004년에 네이버 블로그가 오픈하면서 여기를 열었어요. 처음엔 친구들끼리 노닥거리는 장소였는데 3년전 쯤부터는 본격 바이크 전문으로 팠죠. 라이더로서 블로그가 참 좋은 이유가, 그 땐 지식인 같은데 물어봐도 모터바이크에 대해선 아무런 전문지식이 안 나왔거든요? 헌데 라이더들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자기 경험담이 있는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울 수 있어 좋아요."

블로그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은 것을 들어보니 소박하다. 블로그 초보시절 자기가 쓴 글에 누가 자기 블로그에다 반박글을 올렸고 그래서 네티즌들이 자기 글을 보러 1200명 정도 들어왔을 때 누가 날 공격하진 않을까 싶어 가슴이 떨렸다고 했다.   
 
최근 5일간 블로그의 접속자 통계는 하루평균 300명 정도. 사실 파워블로거라 부르기엔 적어보인다. 그러나 포스팅할 때마다 덧글이 두자리수로 붙는 것을 보면 꽤나 활기를 띤 것을 알 수 있다.

"눈팅하다가 글이 뜸하면 슬쩍 흔적을 남기고 가는 분들이 있어요. 꾸준히 들러들 주세요."

그녀는 보기 드물게 사진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블로거다. 이 역시 싸이월드서 넘어온 사연과 연계된 것으로 별 부담은 없다고 했다. 덕분에 재밌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가령 댓글에 답글 남기면 남는 아이콘이라던지.





말만한 처자가 말만한 바이크를 타면서 말많은 블로그에 욕도 잘한다

난 블로그를 보며 생각했던 인상과 좀 다르다고 슬쩍 떠 봤다.

"조금 성격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본래는 '안 그래요'.

"난 처음에 여자란게 안 믿겼어요. 남자도 꺼내기 좀 민망한 '좇 to the 망'이라니"

"아하하하하."

안 그렇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이 분의 그간 블로그 행적을 보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먼저 블로그 'KOREAN MOTORCYCLE GANGS'에서 우린 그녀의 아이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맴밥'이란 묘한 닉네임은 둘째치더라도 아이디가 'zzoka'다. (--;) 그런데 그녀는 네이버를 애용하는 이유 중 하나로 "아이디가 정감 있어서"라고 밝힌다.

프로필은 더욱 놀랍다. "욕도 안하고 남자도 안타는 착한 라이더 김맴밥입니다"라고? 난 처음에 "남자도 안 탄다는게 뭔 말인가 했다"고 털어놨다. 웃는다. 뭔가 대단한...

착한 라이더는 내 관심법에 의거, 맞는 듯. 하지만 욕도 안한다는 건 월드컵응원물결리얼레드틱 거짓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블로거로선 '이 여자, 욕쟁이'다. 아이디는 허세가 아니다. 욕은 물론이요 남자들도 쉽게 꺼내기 민망한 성인용(?) 키워드가 난무한다. 제목에선 '이 쓰레기같은 놈들 이렇게 모에하다니' '허그데이고 ㅈㄹ이고' 등 욕바가지 한뚝배기 하실래예 모드가 드문드문 발동된다. 본문에선 '좇 to the 망', '젖절한' 등 매우 흐뭇... 아니 므흣한 난무 100연격. 덧글에 답글 달 때는 '닥쳐'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거 아시죠? 똑같은 말이라도 이외수옹이 "하악하악"하는 것하고 말만한 처자가 "하악하악하악앝앙가가아하하아가가아가하" 하는 것 하고는 (남자가 듣기에) 임팩트가 틀리다고. 외수옹과는 다르다, 외수옹과는!




말만한 바이크를 타고 말만하면 욕 튀어나는 그 말만한 처자, 매력있다

하지만 말이다.

"근데 욕 잘하는 여자, 매력있어요."

"그렇...죠?"

진심이다. 그렇게 잠시 침묵.

뭐... 내 여자 취향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지.

여튼 이만하면 디시인사이드에서 놀아도 별 문제 없겠어. 바이크갤러리(http://gall.dcinside.com/list.php?id=bike)에서 활동하느냐고 했더니 글을 남긴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보단 라이더스갤러리(http://gall.dcinside.com/list.php?id=bike2)에서 많이 활동했다고. 참고로 누가 두 갤러리의 차이를 두고 "그건 말이지, 라이더스엔 라이더가 글을 쓰고 바이크갤엔 바이크가 글을 쓰는거야"라고 하던데 그럼 뭐야, 난 지금껏 인공지능하고 이야기 했던 거야?

앞서도 밝혔는데 라이더들의 인터넷 공간에 들어가보면 여기저기 활성화된 곳이 많지만 여러 정보나 노하우가 공유되면서도 '여자 라이더'라 하면 매우 신비한 영역으로 여겨진다. 여성 유저라고 밝히면 사방에서 감지되는 호기심 어린 시선. 그러나 남자가 여자인 척 하는 짖궂은 장난도 있다. 때문에 바이크갤러리에선 여자라고 할 경우 의심부터 하고 본다. 김맴밥, 그녀 역시 웃고야 만다.

"그렇죠. 저도 많이 겪어봤어요. 여자라고 하면 곧장..."

"바이크갤러리 같은데선 '후로게이'(근데 '후로'가 뭔 뜻인진 당최 모르겠다)냐고 맨먼저 코웃음치죠."

"하하, 맞아요. 사진을 찍어 올려놓고 진짜 여자라고 해도 안 믿고 의심부터 하죠."

그런 점에서 이번 인터뷰는 의미가 크다고 했더니 그녀 역시 또 한번 동감해 준다. 

"근데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어떤가요? 남자 라이더들한테 인기 많죠?"

"아뇨. 여자로 안 보던데요. 형이라고 부르고..."

악 이거 뭐야. 서로 마주보고 잠시 웃었다.

"어때요, 바이크갤러리는 정보적 측면에서 신뢰할만 한가요?"

"음, 제가 보기에 바갤은..."

여기서부턴 우리들끼리의 비밀이다.

"...그렇군요."

"그렇죠."

그녀는 프로다. 그래서 깔쌈하다. 사진 찍는게 좋았다는 그녀, 현재는 영상제작 회사에서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있다. 바이크를 타고 맹렬하게 질주하다 멈춰서면 데세랄을 꺼내어 정중동의 순간을 창조한다.

"아, 포토그래퍼라고 하기 민망한데. 그냥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갑자기 울리는 전화소리. 아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며 이 쪽으로 부른다. "인터뷰 중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럽다"면서 대신 에둘러치는 말이 글쎄 "내 팬클럽과 미팅 중이야"다. 이 쪽이 더 부끄럽지 않나? 아니 그보단 염치가 없는 거 같은데. 하지만 염치 없는 여자도 매력적인 법이지.

...디시질을 끊던가 해야겠어. 이게 기자가 기사에서 밝힐 것이더냐. 너무 솔직해지잖어.

"혹시 본명이 김맴밥이예요?"

"네버. 본명은 이겁니다."

보여주는 신분증의 본명은 '유별나라'다. 중3때까지도 심히 개명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른이 넘으니 이젠 부모님이 딸래미 이름 이렇게 지어준걸 후회하고 계시다는 인간극장틱한 폭로드립이 터진다.

"택배 아저씨가 그래요. '이거 유별나라 주식회사로 보내면 되냐'고. 내가 '내 이름이다'하고 말하면 그제사 반신반의합니다."

"이름 예뻐요. 다만 성이..."

"그렇죠."

"차라리 성을 바꿔요."

"그럴까요."

"금도 있고 은도 있고"

"난 김이 좋아."

(동시에) "아하하하하하하하"

금은쇠(쇠 금자니까)가 모인다. 산신령 소환할 기세다.
그럼 성이 김 씨도 아니면서 왜 '김맴밥'이냐. 그냥 김이 흔해서 좋단다. 맴밥이란 이름의 유래는...

...

이런, 안 물어보고 왔다.





말만한 바이크를 탄 말만한 독수공방 처자, 라이더 외길 8년에 라이더 바꾸긴 남자 바꾸듯

"그럼 지금 본인은 개명할 생각이 없고요?"

"30년간 써 온 이름인데 이젠 못 바꾸죠."

이제부터 본격적인 바이크 유저 8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라이더에 대해선 묻고 싶은게 참 많았다. 먼저 그간 섭렵해온 모델 이야기부터.

"제가 7개월을 못 가요. 싫증이 금방 나서 기변을 남자 바꾸듯 해요."

정작 남자는 없어서 현재 FA 선언 중. "남자를 안 탄다기에 수녀님인가 했다"고 농을 던지니 그녀는 "남자 대신 바이크와 결혼한 모양이다"라고 밝힌다.

"다만 상대가 맨날 바뀌니 문제지."

그간 몇 대의 바이크를 타 봤느냐고 물었다. 얼추 여덟아홉은 된단다. 처음 입문한건 국내산 125cc 매뉴얼, vf였다고. 그녀가 지금껏 탄 바이크의 배기량은 50CC, 125CC, 250CC... 400CC도 탔다고 했던가? 이 사이에서 엑시브, 몬스터620, CB400, 포르자, 쉐로우, 알렉스125, 그리고 현재 타고 있는, 당분간은 메인이 될 서브 ST50 등 많은 차량의 차주였다. 주인으로선 아니지만 조만간 대림의 신작 Q2의 시승체험단으로 선정된 만큼 신나는 여름을 맞이할 것 같다.
그녀는 앞으로도 기변을 계속할 것이라며 돈이 모이면 600cc를 넘어 1000대까지 넘볼 생각이라고. 지금도 당장 생각하고 있는 바이크가 있단다.

"언젠가 내가 선망하는 바이크를 만나게 되면 그 땐 붙박이가 되겠죠. 내가 좋아하는 건 오프로드예요."

산악용 오프로드 바이크가 갖고 싶다고 했다. 그냥 그 디자인에 훅 갔다고.

"궁금한게 있어요. 바갤에선 바이크가 서민을 위한게 아니라 부르주아를 위한 장난감이라고 겁 주던데. 블로그 보니까 기변도 그렇고 노트북 이야기도 그렇고, 역시나 부르주아?"

"허세예요. 얼마 못 벌어요."

그녀는 벌이의 절반 정도는 바이크에 쏟는다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다만 진짜로 유지비가 그 정도 나오는건 아니고, 이후 목돈이 한번에 나갈 수 있는 걸 생각하면 그렇다고 했다.

"새걸 사는게 나으려나..."

"바이크는 새 거 사는거 아니예요. 너무 빨리 가격이 내려버리니깐."

"어? 중고면 수리비가 만만찮다던데."

"사서 다시 손볼 정도면 너무 싼 값만 골라 찾아서 그렇고요. 좋은 연식과 알아보는 눈이 있으면 괜찮은 짝을 찾아요."

잘은 모르지만 바이크에 대해 이제 석사를 넘어 박사인 듯.
 



말만한 처자가 말만한 바이크를 타고 털어놓는 사고 10번, 도난 2번, 대파 1번의 말많고 탈많은 흑역사



"바이크를 처음 산게 22살때예요.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 시작할 때였는데 아버지한테 오토바이 타겠다고 했더니 믿지 않는듯 웃으며 "그래, 타라"하셨어요.

"그리고요?"

"이틀 뒤에 사고 나서 10달동안 누웠죠. 그 때부턴 아버지 앞에서 '아부지 이거 오토바이 자켓같...'하고 오토바이 말만 꺼내면 '헉' 하세요. 해서 그 때부턴 말을 못 했어요. 가족들은 다 아는데 아버지만 아직 딸래미 오토바이 8년째 타는 줄 몰라요."

공백기도 있었지만 여튼 바이크를 8년 몰았다는 별나라씨. (맴밥 이상으로 중독성 있는 이름이다) 그간 사고경력을 물으니 "뒤에서 살짝 받아주시는 것까지 해서 크고 작은 사고가 10번 있었다"고 밝혔다. "바이크 입문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나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은 살짝 충격이다. 다만, 본인 과실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제일 큰게 처음 그 사고였고요. 그 땐 제가 바이크에서 튕겨나오면서 어깨와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어요. 병원 입원은 두번인가 했고. 작은 사고는 올해만도 4월, 5월에 한번씩."

양 쪽 팔꿈치에 상흔이 있다. 사고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사고가 나면 꼭 다치는 곳이 턱"이라는 그녀, 안전을 위해 "헬멧은 오픈페이스는 물론 시스템헬멧(접히는 풀페이스)도 위험한 만큼 8만원짜리 싸구려지만 풀페이스를 쓴다"고.

"도난 사고는?"

"두번 당했어요. 같은 기종에서. 한번은 찾았는데 두번째는 못찾았지요. 그냥 바이바이했어요."

액시브라 했던가, 125cc 한대가 그렇게 사라졌다. 그녀는 "도난은 그냥 운명이려니"하고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만하면 해탈 수준이다. 지금 타고 온 ST50엔 도난장치가 있느냐고 했더니 아무것도 없다고 밝힌다. 도난경보기를 설치해도, 셔터를 내려도 핸들락을 해 놔도 CCTV 앞에 내 놔도 트럭앞엔 장사없단다. 125CC 이상은 번호판을 부착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떼면 그만"이라고. 여러모로 아픈 역사다. 

한번은 다른 사람에게 키를 맡겼다가 그만 그 길로 굿바이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잘 모르는' 후배한테 애칭 '포식이'(폴)인 포르자를 시승시켜줬다가 그 잠시 사고가 나며 대파. 문제는 '아마 죽을때까지 만난걸 후회할 거'라는 그 후배가 알고보니 무면허였다는 거, 게다가 '잠수' 테크트리까지 탔다. 덕분에 혼다의 빅스쿠터는 은하수 건너 오마니를 만났고 배웅길의 그녀에겐 눈물의 융단폭격.

...어째 시는 내가 쓰는군.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녀의 시 '포식이를 위한 레퀴엠'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http://blog.naver.com/zzoka/70070192974)




말만한 처자는 말만한 바이크를 맹렬하게 타고, 말만한 처자에 말많은 세상에 던지는 말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탄다"

그것뿐이랴, 한국에서 바이크 라이프란 여러모로 순탄치 않다. 먼저 제도상의 문제. 한국만 바이크 유저가 괴롭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동남아는 워낙 생활화가 되어 있어서 사륜차보다 이륜차가 더 많고요, 유럽은 규제 강하게 할건 하고 느슨하게 할건 또 하고, 세금 물리고 뭐하고 할거 다하게 하면서 맘놓고 타게도 해주죠."

"거긴 고속도로 진입도 되잖아요."

"우린 주차하는데도 어렵잖아요. 어디 식당같은데 들어가려고 주차하려면 돈 주고 주차증 끊으려 해도 손사래를 쳐요. 그렇다고 바깥 도로에 세워두면 그건 또 불법이거든요? 그래서 불같은 성격의 라이더는 관공서 가서 따지지만 돌아오는 답은 '우리도 답이 없다'예요. 알아서 잘 하라는거죠. 제도적 장치가 아예 없어요."

그녀는 자기가 헬멧을 쓰면 어려보이다 보니 나이어린 여자 라이더를 우습게 보고 초장부터 "야, 오토바이! 훠이!"하고 주차를 막아서는 아저씨들이 있다고 밝힌다. 그럴 경우엔 물러서지 않고 싸운다고 했다. 좋게 말하면 "아 예"하고 물러서지만 이럴 경우엔 본인도 무자비하다. 일전엔 그럴 경우 전화로 인근 가족이나 친구 중 남자를 불러 해결했지만 이젠 혼자서도 다 해결해버린다고.

얼마전 올린 포스팅 중엔 이런 글이 있다. 여자 라이더로서 도로주행을 하다보면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중 짜증나는 열가지를 모아 놨다. 이 중엔 여자가 바이크를 탄다고 위험하다고 하는 사람, 내 친구가 바이크를 타다 죽었다는 사람, 집에선 뭐라 안 그러냐고 묻는 사람 등이 포함돼 있다.

"오지랖이죠."

"그럴 경우엔 뭐라고 하나요."

"아, 네."하고 그냥 말아요.

여자가 바이크를 타면 생판 모르는 사람이 뭐라고들 하는데, 난 이 부분에서 '키노의여행' 중 에피소드 한편을 떠올렸다. 서른살 가량의 남자가 다가와선 '그녀'에게 "젊은적 객기로 모토라도를 타는건 부질없고 죽기 일쑤"라고 경고를 하지만 실상은 그도 공처가가 되기 전엔 라이더였다. 어쩜 그건 전혀 다른 내면의 뭔가가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지. 여튼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재밌는 세상이다.

"보험은?"

"책임보험을 들어요. 종합보험이래야 대인 대물 보장이 높아지는 정도? 자기손해까지 보장해 주는 보험은 서른다섯살 이상 남자에 무사고니 뭐니 하며 사실상 돈을 내겠다고 해도 못 드는 게 사실이예요. 저같은 사람은 비싼 보험료 내겠다고 해도 받아주질 않아요."

헬멧을 써도 뒤에서 보면 영락없는 여자다. 바이크타는 여자는 약자일 수 밖에 없다. 뒤에서 위협하는 차도 있다고.

"일전엔 거기에 눌렸지만 요새는 그냥 무시해요. 그래도 맘 속으로는 겁이나죠. 확 박는 거 아닌가 싶고."

"그래도 얼마전 스쿠터(50cc) 열풍으로 수요가 늘고 인식도 좀 달라지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그렇게 큰 변화는 없다"고 밝힌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것은 라이더를 곧 폭주족으로 모는 부정적 시선일 터. 그녀는 인터뷰 전 내 기사 중 고 김의환 씨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고 밝혔다. (http://kwon.newsboy.kr/178) 2년전, 한 젊은 라이더가 고의적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이를 보도하는 방송이 사망자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멘트를 사용하고 악플러들도 이 사람을 폭주족으로 몰아가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를 평소 잘알던 사람들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서명운동 등에 나섰고 이는 상당한 반향을 얻으며 1만명의 서명을 받았다. 당시 인터뷰에 응해 주었던 지인은 마지막길에서 오명을 벗겨줄 수 있었다며 담담히 밝혔다. (http://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2983)

"당시엔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난리였었죠."

"괜찮나요?"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해요."

"연예인 라이더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졌을 때도 같은 일이 있었잖아요. 이언 씨하고 먼데이키즈 김민수 씨. 그 때도 악플러들이 수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곧장 폭주족으로 몰며 '잘죽었다'고 악플을 달아 내가 기사로 담았었어요. 꼭 그렇게 안타까운 쪽으로 바이크 이야기를 싣게 되더군요."

"그 때도 '아 쟤들은 당연히 또 저러겠지' 했어요. 바이크를 타다 누가 사고 나면 '폭주족이 사고를 냈구나' 하고 또 그러겠죠."

"속상하지 않고요?"

"달라지질 않으니까, 이대로 그냥 악플러는 악플 달고, 저는 저대로 마이웨이죠."  





말만한 처자가 말만한 바이크를 사랑하는 이유 "그래도 사랑해"

그래도 그녀는 바이크가 좋단다. 숱한 어려움을 달고 살건만 무엇이 이토록 바이크의 마력에 빠져들게 하는건가. 어떤게 좋으냐, 속도감이 좋으냐는 물음에 정작 속도를 내면 겁이 난다고 했다. 소심한 라이더라고. 단지 바이크를 타며 사진을 찍는 생활이 좋다고 했다. 바이크를 사진 속에 담는 순간은 대단한 즐거움이다.

"그냥 좋아요. 왜 사람이 좋아지면 그 사람의 모든게 좋아지잖아요. 머리가 길어서 좋은게 아니라 이 사람이 좋으니까 그런 모습도 받아들이게 되는거고. 달리는것 때문이 아니라 바이크의 존재 자체가 좋은거예요. 어릴 적, 서너살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8년째 타고 있고."

"앞으로도?"

"응!"

"몇살까지 탈 거 같아요?"

"몸이 말을 들을 때까지, 백발에 할머니가 되어도.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배기량이 크고 피로가 큰 바이크로 장거리는 못타게 되겠지만 그 땐 작은 스쿠터로라도 동네를 달릴 것 같네요."

그녀는 바이크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하고 산다고 했다.

"내 나이가 한국나이로 서른 둘인데, 하고 다니는 복장을 보면 내 나이 같지 않잖아요?"

"서른둘이면 충분히 젊은 나인데."

"한창 젊죠. 그래도 서른두살 여자라고 하면 대개가 직장생활하면서 세미정장으로 다니고, 바이크가 아니라 차를 몰고, 또 주말이 되면 명품 백, 명품 악세서리를 소지하는 걸 대개 사람들이 떠올리잖아요?"

"대신에 명품 헬멧, 명품 머플러를 선망하지 않나요?"

"이 쪽, 라이더 세계로 모든게 바뀐 거죠."

"결혼할 남자도 라이더이길 바라나요?"

"꼭 그렇진 않지만, 일단 내가 라이더임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라면 같은 라이더가 편하겠죠."

"자신의 아이가 라이더를 하겠다면 말릴 건가요?"

"결혼 생각도 당장 없고 아이 생각도 없지만 만일 낳게 된다면 서너살부터 일본으로 라이더 유학을 보내고 싶어요. 만일 재능이 없어 못 타면 '넌 왜 니 아빠만큼 못 타냐'고 야단치고..."

"아빠? 엄마가 아니고?"

"애를 라이더로 키울 거면 당근 아빠도 라이더겠죠?"

아아, 결국 이 분이 원하는 백마탄 왕자님은 빅스쿠터 안장에 앉은 왕자님이란 거구나.

"위험하다고 반대는 않겠단 거군요."

"탄다고 하면야 내가 더 조기교육으로 완성시킬건데?"

헤어질 때쯤 난 풀페이스 헬멧을 쓴 그녀에게 "앞으로도 개인적인 인연으로 엮이고 싶다"고 밝혔다. 나도 바이크 유저가 되면 이래저래 도움을 청할것 같다고 했더니 "그래야죠, 또 만나야죠"라 답해준다.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르지. 어쩜 내가 저 사람과 거래를 할지도.
열심히 벌어놔야 겠다.




에필로그 -

나 - 국장. 나도 스쿠터 한 대 사주면 안돼요? 취재용으로...

국장 - 배째 섀꺄...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신촌에서 작렬! B-boy 5인조 브레이크댄스 타임
2010 cyon B-boy 챔피언쉽 서울지역예선 '막간의 유희' 




15일 서울 신촌 젊음의 거리. '갬블러즈 크루'의 번외 쇼타임 中 -





국내 최대 비보이 경연대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10'의 서울지역예선전이 15일 신촌 젊음의 거리에서 열렸다. 16강 결승토너먼트를 앞두고 게스트 겸 심사위원으로 등장한 '갬블러즈 크루'의 번외 거리 공연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팀은 앞서 열린 부산대회에서 1위에 입상, 본선 티켓을 끊어놓은 상태다.




이날 대회는 2007, 2008년 2년 연속 전국을 제패했던 진조크루가 우승, 또 한번 결선무대를 밟게 됐다. 준우승은 RIVERS가 차지했다.


Tip-

"오늘 경기 우승팀 누굴까요? ...아는 팀 이름 있어요?"

갬블러즈 크루의 질문에 한 여학생이 답한다.

"MB..."

"MB? ...대통령?"

"?!?!"

"네. 있어요. MB 크루."

이 팀이다.



순간 모였던 사람들 전부 벙 쪘던 거 알지.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책에 내 글이 실려나온다는 경험, 그 짜릿함에 대하여




내 글이 책에 실려나오는 건 신문에 기사가 나오는 것과는 또다른 짜릿함이다. 종이지면에서, 또 인터넷지면에서 내 바이라인을 확인하며 내가 기자구나 하고 느끼는건 현재의 나를 확인하는 순간이고, 책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는 건... 일종의 외도?

남부러울 것 없을 듯한 양반들이 꼭 한번씩 책을 내는건 이런 맛 때문인가 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분좋은 자극이다.

책에 내 이름이 실린 적은 과거에도 몇번 있었다. 누구나 졸업생이 되면 학교 교지에다 '나도 한마디'를 짤막하게 남길 것이다. 이것 외에도 내 소설이 실린 적 있었다. 그리고 이에 앞서 국민학교(우리때 초등학교는 없었다) 5학년때 '20년 후의 나'란 제목으로 학급 모두가 공상일기를 노트에 써서 모았는데, 도서부장이던 나는 이걸 복사집에서 머리수만큼 복사 및 제본했었다. 책을 펴내는 경험까지 했던 셈이다.

하지만 버젓이 파는 책에다 내 이름을 올린 건 아마도 지금이 처음인 듯 하다. 물론 이번에도, 혼자의 독집은 아니고 많은 이들과 함께 원고를 모은 책이지만. 그래도 '내 책'이라고 여긴다.

도서출판 느티나무아래에서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을 펴냈다. 정가 14500원. 한달전 출판기념회를 가지고 대형문고 등에 풀렸다. 이 책의 저자 25인 중엔 내가 들어 있다.




오케이. 인증한다. 여차저차해서 김진혁 PD와 나란히 초청발언대에 끼게 되었으니, 가문의 영광이다.

내 이름이 여기에 오른 건 언젠가 기사로도 소개한 뜻하지 않은 인연 때문이다. 1년전, 촛불 1주년의 현장에서 난 기념티셔츠를 파는 시민악대를 만난 적이 있었다. (http://kwon.newsboy.kr/1214) (http://kwon.newsboy.kr/1215)

이 때, 동영상을 찍고 돌아서려니 한 사람이 나를 붙들고 전단지 하나를 건네는 거였다. "우리 출판사에서 이러한 책을 내고자 원고 모집을 하고 있으니 원고 공모에 응해 보라"는 것이었다.

상금이 있다기에 잿밥을 염두하고 글 하나를 써서 보냈다. 사실 글이 잘 나오질 않아 몇번을 고쳐쓰고도 맘에 안들었던 투박한 원고였는데, 역시나 그 때문인지 난 입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책에도 내 글은 안 나올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몇달이 지난 뒤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게 된다. 원고교정 막바지에 내 글을 추가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리곤 입상작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투고한 초청발언대 코너에 덜컥 하고 함께 실려버렸다. 




그냥저냥 내가 경험했던 것을 주제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미천한 원고인데, 황송하게도 벌써 내 원고에 대한 평이 있었다. 으뜸상 당선자인 김창규 님이 블로그에서 내 글 이야기를 꺼낸 걸 보고 (http://kimchangkyu.tistory.com/801?srchid=BR1http%3A%2F%2Fkimchangkyu.tistory.com%2F801) 적잖이 감격했다.

내가 펴낸 글을 다른 이가 읽고 반응해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멋진 감흥이다. 그에 앞서 기록지에 내 이름을 남기는 것 또한. 그건 기사의 바이라인에서도, 책의 글쓴이 소개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난 여기서 한발 나아가 그 감흥을 확대시킨다. "이 세상에 내 이름을 흔적으로 남겼다"라고. 내가 죽은 뒤에도 이 세상에 나란 사람 있었노라고 존재를 알리는 순간...이라고 해석하면 너무 과하려나.





개인적으로 맥주캔 하나 딸만한 경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경험이니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책에 또 언제 내 글이 나올거라 믿겠는가.

독집? 그게 뭐, 쉽나. 아무나 책을 내나.
뭐... 그렇다고 기사는 개나소나 다 쓴다는 말은 아니다. (먼 산)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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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의 칵테일] 14. 로맨틱드림, 봄꽃에 적시는 꿈




서울 신촌 젊음의 거리.
지난 주, 그 때만 해도 이렇듯 벚꽃이 한창 폈다. 이젠 다 졌을 거지만. 한 주가 지나도 아직 남아있는 그 맛을 음미하며 글을 적는다.

벚꽃 비롯하야, 봄날의 꽃은 이리도 한순간의 꿈만 같다. 1년에 딱 1~2주, 정말 아름답게 봄날의 설경을 피워놓고선 흔적도 없이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다시 1년 뒤를 기약해야만 하는 예쁜 기억을 남겨두고. 커플은 좋겠다. 이런 날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으니.

꽃잎은 떨어지는데, 고독한 전사는 마음에 혹해 모처럼 바에 들어가 한잔 홀짝일까 망설인다. 그 때, "어 안녕하세요"하고 누가 붙든다. 마침 바텐더가 거리에 나와 있었다.

"거리 상황 좀 보려고 나왔다"는 그와 함께 바에 들어섰다.

"봄날의 벚꽃과 잘 어울리는 메뉴 좀 추천해줘요"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메뉴판을 다 들여다 봐도 뭐랄까, 여름날을 연상케 하는 이름은 많아도 봄날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바로... 이거였다.




로멘틱드림. '로멘틱한 꿈의 달콤한 딸기 맛'이라. 마치 남성 화장품 문구같은데 이거.
"알콜 도수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 여성들이 주로 찾는다"는 설명을 들으며 한 잔을 기다렸다.

조금 있다 보니, '벚꽃 음료'가 나온다.




그렇다. 한순간 벚꽃을 갈아서 만든 음료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흰색 안에 수줍은 듯 자리한 분홍빛깔의 벚꽃, 꼭 그 색깔같다.

거품잎 속으로 스트로우를 밀어넣고, 가볍게 빨아본다. 벌이 꿀을 탐하듯.

무지하게 달다. 딸기향과 함께 달콤한 맛이 감도는데, 정말로 알콜 느낌은 거의 없다. 누가 짖궂게 어린 아이한테 한잔 건넸다간 그 아이, 멋도 모르고 계속 마시다가 홍알홍알 거릴 법 할 정도다. 내가 마신 술 중엔 제일 그 본연의 것과 거리가 먼 술이다.

향은 생각보다 진하다. 진한 단 맛과 더불어 어딘가 '끈적한' 느낌마저 동반한다. 천천히 마신다고 마셨는데, 그래도 쉴 새 없이 홀짝인 탓에 금새 잔이 가벼워진다.




줄어든 잔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한순간 강렬하게 기억을 남기는 그 한 잔은, 정말 빨리도 사라져간다.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꿈'을 이름에 담을 법한 그런 칵테일이다. 그야말로 한순간의 꿈과 같은 술.

"무엇이 들어가느냐"고 물었더니 "피치 쥬스'와 딸기 시럽이 들어간다고. 그리고 여기 들어가는 술은 다름아닌 '약간의 럼'. '조금'들어간다는 말에 강조가 담긴다. 정말이지 칵테일의 단골 레시피다.






어느새 꿈은 그렇게 끝이났고, 난 물 한잔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바깥은 여전하다. 날이 저물었어도 꽃은 불빛에 절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흐드러질듯한 수만의 꽃잎. 저 꽃잎도 금새 사라지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존재한다. 아직 꿈은 좀 더 꿔도 된다.




로맨틱드림
신촌 바 BM
가격 6천원
레시피 피치샤워, 딸기시럽, 약간의 럼 등
촌평 - 로맨틱한 드림, 그 이름 그대로 한순간의 강렬한 청량함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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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가는 길' 청량리로 갈까요?
당일치기 4월의 제천 여행기 - 1






어릴 적 '종로로 갈까요 청량리로 갈까요' 하는 노랫말을 흔히 들었다. 서울 살이 5년. 종로는 자주 다닌다. 청량리는 언제 와 봤는지 기억이 없다.

그 인연을 맺어준 게 제천 가는 길. 충북 제천으로 당일 기차 여행을 떠난다. 4월의 여행, 강릉가는 기차. 여러모로 방랑벽 있는 사람에겐 좋은 아이템이지.

서울 사람이 제천을 가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차 있는 부르주아(내 귀에 부르주아다. 그래서 돈 없다는 자그니 님도 부르주아로 뵈인다)야 뭐 네비게이션 언니 말 따라 삼천리면 되고 (오늘따라 인용 엄청 한다) 버스 편이 있다는데, 자그니 님한테 조언 구해보니 조금 더 빠르긴 하지만 그래도 기차란다.

처음엔 서울역에서의 직통선을 찾았다. 아쉽게도 저녁 6시경 있는 열차 하나가 전부다. 그럼 어떻게 가야 하나. 청량리역에서는 자주 있단다. 아하. 그렇군. 부산역에선 찾기 어렵지만 해운대역에선 기장 가는 열차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렸다. 그렇게 청량리로 향했다.

그런데, 이젠 기차도 시간에 있어 버스에 뒤지지 않는다.





마침 4월, 어제부터 20분 가량 단축됐다. 2시간 30분 잡던 것을 이제 2시간 10분 남짓이면 오케이.





미리 체크할 게 있다. 이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처음엔 주중에 포함될 줄 알았다. 그런데 금요일도 주말 비용을 받는다. 금요일부터는 주말 책정, 어른 9300원. 이래저래 왕복 2만원 돈 생각하면 된다.




달라진 열차시간표다. 참조.




나는 서울 부산 코스로만 움직이는 터라, 기차표가 이렇게 영수증처럼 나오는 건 또 처음 본다. 실제로 영수증으로 사용하라는 안내지시가 있다. 재밌는건 갈때나 올때나 표검사가 없었다는 점. 무임승차가 걱정되는 부분이다. ...맞다. 그게 아니라 요샌 다른데서도 잘 안 하지.

'삼포 가는 길' 이라는 소설이 있다. 매우 유명하다. '제 이름은 점례예요'가 명대사. ...난 아직 안 봤지만.
설마 나한테 그럴 인연 있으랴. 기차에서 인연 맺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극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나의 '제천 가는 길'은 막을 올린다.




서울에서의 강원도 가는 열차 이야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춘천가는기차, 유명우 선수가 밤에 홀로 올랐다는 기차... 서울인들에 있어 이것은 낭만의 철로이자, 때론 도피의 출구기도 하다. 지금껏 말로만 들었던 그 기차를 경험하고 있다.




나는 계속되는 철야로 지쳐 있었는데, 묘하게도 여기서 피로가 해갈되는 것이었다. 무궁화호 열차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정말로 예뻤다. 이게 강원도 가는 기차 여행인가 싶었다. 심심찮게 물이 나온다. 큰 호수도, 작은 냇가도. 아담해 보이는 도시나 부락이 보이면 정차하고, 출발하면 어느새 터널과 우거진 산림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다 탁 트인 평야가 하늘과 두 가지 세계를 연출해 보인다. 나는 카메라로 구름 사냥을 했다. 오후의 푸른 하늘은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것이었다.




경부선... 아니 KTX선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선 이제 보기 어려운 화물열차를 여기선 사람 타는 열차보다 많이 마주친다.




지나치다 보면 예쁜 마을역이 나온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이런 역의 역장으로 살아가는것도 괜찮지 싶었다.




약간의 연착. 5분가량 늦어진 시점에 제천에 닿는다.
깜박하면 지나친다. 특히 나처럼, 부산 서울간의 종착역서 종착역으로 다니던 여행에 익숙한 이들에겐. 실제로 내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맘 놓고 그냥 있다간 강릉까지 날아가 버린다. 기차표에 명시된 시간대를 체크하면서, 그렇게 내려야 할 역을 확인해야 한다. 다행히도 이 곳은 꽤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인지 많은 이들이 오르내리니 조금만 주의하면 큰 문제는 없겠다.

제천역의 하늘은 역시나 푸르다. 자, 여기서부터 제천 여행이 시작된다.

- conitnue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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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이순신 장군의 그림자를 쫓다 (3)
2012 여수 엑스포 블로거 팸투어 - 3


27일 일정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머무른 곳은 진남관 바로 아래, 여수 해변공원에서였다. 마침 이날 오전 준공식을 갖고 시민들의 축제판이 벌어졌다. 이 곳 광장을 이순신장군 광장으로 명명한데서 알 수 있듯, 장군의 유적지와 연동하는 새 명소를 꾀하고 있었다.



진남관에서 장군의 부대가 내려온다.




그러고 보니 이날은 마침 안중근 의사의 서거 100주기이기도 했다. 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충무공과 나라없는군대의 장군을 자처하며 군인포로의 대접을 요구하던 안중근 의사. 시간을 넘어 한 접점에 모이는 항일의 순간.




오후가 되어 찾은 곳은 충민사. 사적 381호인 이 곳은 장군과 우수사 이억기, 보성군수 안흥국 두 장군을 함께 기리고 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적비엔 풍토와 세월의 흔적이 남았다.  








데쟈뷰?

어릴 적, 언젠가 이 곳을 와 본 듯한 느낌. 여수까지 내려온 기억은 없는데. 그러나 필시 저 초상화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하던 기억이 분명 남아 있다.

그의 그림자 찾기를 반복하다 내려올 때, 나는 또 하나의 흔적을 카메라로 주워 담는다.




나라를 근심하는 생각조차 조금도 놓이지 않아 봉창밑에 앉았으니 온갖 회포가 일어난다. 난중일기에 오른 한 줄.

그는 일기를 덮으며 이것이 훗날 비석으로 읽힐 것이라 예감했을까. 대리석의 일기장을 펴놓은 장군의 자취는 도시 이 곳 저 곳에 스며 있는데 질의할 대상은 마땅찮다.

계속 -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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