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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배 산드라블록의 최고, 최악 여우상 동시석권 드라마


'대인배 산드라 블록'의 여우주연상 더블이 화제다.
헐 리웃 스타 중 옆집 소녀 같은 친근한 인상으로 알려진 산드라 블록은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매우 특이한 이력 하나를 쌓는다. 첫번째는 골든라즈베리상 여우주연상 수상이다.

골든라즈베리상은 아카데미 전날 이뤄지는 시상으로, 최고가 아닌 최악을 가리는 영화상. 당연히 대개는 불참한다. 한국에서라면 당장 명예훼손이니 모욕이니 소송이 빗발칠 행사로 언제 벤치마킹될지는 예측조차 불가.

그런데 여기서 산드라블록은 이 최악의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고자 참석한다.




출처 유튜브 mariejoelleparent 님


산드라블록 은 여걸이란 말이 부족하지 않은 풍모를 보였다. 자신에게 수상의 영예(?)를 가져다 준 영화 올 어바웃 스티브의 디비디를 가득 가져와선 사람들에게 선물하며 '영화를 보면 자신의 이 수상이 옳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땐 이 상을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슈퍼스타의 위엄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 날, 아카데미에서 또 하나의 트로피를 거머쥔다. 여우주연상. 이번엔 정말로 최고의 트로피다. 또 하나의 전년 출연작 블라인드 사이드가 그녀를 진정한 여제의 자리에 올려놨다. 한 배우가 최고와 최악의 주연상을 동시에 쥐는 건 매우 드문 일. 그리고 이 희귀한 기록에 있어 그녀는 당찬 대응으로 진정한 스타이자 호감형 배우임을 새삼 각인시켰다.

네티즌들은 곧장 '대인배'라는 칭호를 아끼지 않으며 찬사를 쏟았다.

           
 

           
 
사실 '대인배'는 따로 확인한 것이 아니다. 감탄사 뒤에 떠오르며 절로 검색대에 올리게 된 키워드. 같은 생각을 가진 네티즌들이 많음을 확인한 건 그 뒤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최악의 상이 있다면, 이를 당당하게 걸어나가 움켜쥐고 다시 검증해달라고 외칠 수 있는 대인배 스타를 확인할 수 있을까. 거기다 최고의 상으로 자신이 최고임을 증명해 보이기까지 하는 건 다음 문제고, 딱 거기까지만이라도 해 낼 수 있는 배짱있는 스타. 법치주의나 명예가 이상한 쪽으로 오남용되는 시류 속에서 새삼 저 헐리웃 스타의 위엄이 달리 보인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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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배삼룡의 휴머니즘, 빈소에서 그리는 명장면들



생각을 잘못했다.
지난번 임수혁 선수의 빈소만 생각하고 쓸쓸함이 묻어날까 찾아갔건만, 여기엔 상당히 많은 취재진들이 자리해 있었다. 확실히 흑백TV시절 코미디와 쇼프로그램을 주름잡은 명인임엔 틀림없는 모양이다. 굳이 내가 미약하나마 채널 하나를 보탤 필요는 없지 않았나 했다.

그래도. 임수혁 선수와 마찬가지로 그에겐 빚 진 것이 있는 꼬꼬마, 멀리서라도 찾아와 본 건 잘했다 싶다. 무슨 이야기냐고? 이번에도 조금 길 거 같다. 2030세대는 기억할 만한, 그러나 젊은 세대는 잘 모를, 또 좀 더 나이 있는 40세대 또한 모를 우리 또래의 이야기.

23일, 서울 아산병원 배삼룡 옹 빈소.


향년 84세. 90년대까지만 해도 KBS, MBC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기에 젊은이들에게도 비교적 익숙한 얼굴의 배삼룡. 그 때만 해도 배삼룡 옹은 구봉서 옹과 더불어 원로라는 말보다 중견이란 말이 더 어울릴만치 왕성한 활동을 했다.

사실 80년대 들어선 코미디언이란 말보다 개그맨, 개그우먼이란 말이 더 익숙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개그와 코미디의 개념이 참으로 모호한지라, 오래 전 배우들에겐 코미디언이라 부르는게 예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나다.

배삼룡의 코미디는 개그콘서트가 대세인 현재의 트렌드와는 확실히 다르다. 어쩜 그의 사람 웃기는 방법을 '코미디'로 정의해 현재 개그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도 하나의 분석방법일지 모르겠다. 

그의 시기를 흔히 '슬랩스틱', 때려서 웃기는 시대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내가 봤던 시절은 그의 전성기가 아니라 말년을 정리하는, 80~90년대의 컬러 시절이라 모노로그 시절의 것과는 또 다를 수도 있겠다.)

내가 기억하기에 그가 잡은 캐릭터, 그가 보여준 코미디는 슬랩스틱이라기 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웠다. 이는 구봉서 옹도 동일하다. 내가 기억하는 이들은 존재만으로 폭소탄을 던지는 그런 배우들은 아니었다.
'영구야 영구야' 등에서 배삼룡 옹과 호흡을 자주 맞췄던 심형래와 비교해 보자. 당대최고 인기인이자 슬랩스틱의 전형적 얼굴인 심형래는 제스처 하나만으로도 애들을 넘어가게 했던 반면, 배삼룡은 웃음을 던지는 역할을 죄다 그에게 맡기고 대신 극의 진행을 잡았다. 실은 그것이 '코미디언 배삼룡'의 진짜 매력이었다.

순간순간 재치와 애드립 등 개인기가 중점을 차지하는 요즘 개그와 달리, 당시 프로그램은 매우 드라마틱했다. 웃음을 한꺼풀 제껴두면 순간 울음바다가 되는 순간도 간간이 목도했을 것이다. 캐릭터 그 자체보단 캐릭터의 포지션이 더 중요했던 시절. 처음부터 폭소보다는 해학극에 목적을 둔 작품도 상당수였다. 


잠시 현실로 돌아와서.

화환 하나가 내 눈을 잡아 끈다. 내노라하는 개그맨 후배들을 비롯 여러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지난번 임수혁 선수 때도 그렇고, 참 아쉽다. 나도 들어가 향불 하나 피워올리고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고 싶건만, 생전 면식 없는 이가 조의금 봉투 없이 들어가기는 차마... 게다가 카메라들고 들어서기도 그렇고. 그저 바깥에서 이렇게 회상하는 수밖에.

배삼룡 옹이 나온 작품들을 떠올려 보면... 그래, 솔직히 말해 내게 있어 '푸하하'하고 '빵 터지게 하는' 그런 슬러거는 아니었다. 변방의 북소리에서 천하의 바보짓으로 폭소케 하는 심형래 씨나 고도의 액션으로 환성을 터뜨리게 하던 '밥풀떼기' 김정식 씨가 거기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세월을 90년대로 맞추면 맹구 이창훈 씨와 오서방 오재미 씨가 그 역할을 넘겨 받았고.

그러나 그는 웃음이 아니라 묘한, 정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었다. 코미디언이 사람을 웃겨야지 다른 감정을 몰고 오면 어쩌느냐고? 누가 웃지 않았다고 했나. 그는 순간적인 폭발 대신, '배시시'하고 입가에 미소를 뜨게 하는, 그리고 그 여운을 참으로 오래도록 가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 여운은 수초도 아니요, 수일도 아니요, 20년이 넘도록 남아 있는데.

그의 작품 중 아직도 잊지 못하는 명장면이 있다. 20년이 넘었다는 그 여운의 장면이다. 금요일 오후시간대였나. KBS 9번에서 재방영하는 코미디 프로가 있었다. 유머1번지나 쇼비디오자키, 코미디하이웨이 같은 트렌드 프로그램보다는 다소 올드한 작품. 메인 프로는 아닌 듯 하고, 막말로 '이젠 한물 갔다'는 중견급 코미디언들을 데려다 복고풍의 꽁트 코미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마지막 코너는 그가 주인공이었다. 오래된 극단 무대, 희극을 보러 온 관객들 앞에서 무대 연출을 보조하는 노직원이 그의 역할.

그의 그 역할은 언뜻 보기에 영구나 맹구와 비슷하다. 무능한, 사고뭉치의, 바보 같은 캐릭터.

신파극에 눈 내리는 장면을 연출하려고 그는 천정에 올라 밀가루를 뿌려댄다. 선남선녀는 아래서 "눈이 오는군..."하고 대사를 친다. 그런데. 그는 그만 밀가루판을 떨구고 만다. 밀가루 한포대 분량이 통째로 무대에 쏟아져 내리고, 극은 엉망이 된다. 어쩔 줄 몰라하는 배삼룡. 그러나 수습하려고 하면 일은 더 커진다. 악의 없는 실수라 어찌할 수도 없는 단장.

그 모습을 미운 아홉살 꼬마는 참 따스한 감성으로 바라봤다.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오는 거였다. 그의 그 역할은 어딘가 모자라보이지만 매우 선량하고, 뭔가 열심히 해보려는 순박한 캐릭터. 그렇기에 엇나가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방금 SBS뉴스가 올림픽 소식 막간에 그의 인생을 다룬 신문 보도 타이틀을 전하던데,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라 했나. 딱이다. 단순히 세상사를 우그러뜨려 희화하고 해학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 감동 비슷한 뭔가를 전하는 모습. 내가 현란한 연출과 개인기의 개그콘서트를 보면서도 순간순간 그 해묵은 장면을 떠올렸던 건 다름이 아니다. 정작 지금의 개그 프로는 눈부신 발전 속에서도 정말 중요한 뭔가를 잊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즉, 개그 안에 휴머니즘을 담았던 과거의 상실이 아쉬워서였다. 컬러로 전환했음에도 그 흑백 시절의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던 배우, 그 사람이 배삼룡이다.

그는 주로 선역을 맡았다. 영구가 독립운동가라면 놀라려나? 사실이다. 일제시대를 무대로 한 그 작품에서 아버지도 독립운동자금을 대는 사람이었고, 영구도 비밀요원 쌍라이트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고 다녔다. 이들을 키워낸 할아버지가 배삼룡이었다. 캐릭터 설정에서 '존경받는 위인'을 전제했으니 지금의 개그 프로에선 쉽지 않을 도입이다. 훌륭한 어른의 모습을 개그 프로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 그건 그거대로 당대의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코미디하이웨이에선 '자라 조금산'을 살려준 덕에 성공가도를 달리는 '농촌후계자 심형래'와, 그하고 결혼하게 되는 '재벌집 규수 김미화' 등이 나올 때 역시나 사람좋은 할아버지로 출연했다. 주역은 모두 젊은 기수들에게 내주면서도 극이 엇나가지 않도록 뼈대를 제대로 지탱한 중견이었다.

실은 이 날 빈소에서도 김미화 씨가 찾아와 있는 걸 봤다. 20년전 극 중 며느리였던 그녀. 순간 시할아버님의 빈소를 모시는 며느리 같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 때의 기억때문이겠지.

그의 죽음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어릴적 그를 보고 자라난 햇병아리 저널리스트에겐 추억이 전설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그를 극에서 어른으로 모셨던 후배에겐 대선배이자 어른을 보내는 시간이다. 구봉서 옹과 같은 동년배 동료들에겐 저물어가는 당신들 인생을 또 한 페이지 정리하는 경건하고도 애틋한 시간이다. 슬프면서도 부럽고 존경할법한 일이다. 나이들어 가는 사람의 숙명을 슬프게만 보지 말고 아름답고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말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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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원피스 스트롱월드, 소년 애니메이션의 왕도에 충실한 걸작 





원피스 월드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란 슬로건이 무색치 않은 작품이었다.

감히 2월 11일, 본 개봉을 기대해도 좋다고 전한다.


[리뷰] 원피스 스트롱월드, 소년 애니메이션의 왕도에 충실한 걸작

원피스 팬들을 사로잡을 역대최대의 전투 스토리, 개막

밀짚모자 해적단에 최강의 적이 엄습한다. 현존하는 골드 디 로저 시대의 해적, 전설로 불리는 금사자 시키. 샹크스 같은 해적이면 좋겠건만, 안타깝게도 흉포한 악당이다. 약육강식의 하늘섬 스트롱월드의 지배자로 마을 주민들을 착취하고 동물들을 잔혹한 실험대상으로 삼는다. 이 같은 악당과 떡 하니 마주친 루피 일행, 그냥 모른체 지날리도 없지만 나미가 납치 당함에 따라 남의 일이 아닌 상황까지 와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루피 일행의 초기 멤버들이 나고 자란 고향 이스트 블루를 파멸시킬 계획까지 갖고 있다. 

"내 동료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분노에 찬 루피 일행과 금사자 시키 일행의 한판 대결. 전황은 절망적이다. 시키의 세력은 5000명. 밀짚모자 해적단이 아무리 일당백이라지만 불과 아홉, 게다가 나미는 상대 손에 넘어가 여덟이서 이들과 맞서야 한다. 그러나 답은 너무도 명확하다. 원피스에서 루피 일행의 모험이 갖는 최대의 강점이기도 한 스토리의 직통 라인. 

이제 원피스의 팬들은 극장판 시리즈에서 한 획을 그을 신작을 마주하게 된다.




루피 일행 중 다섯이 덤벼도 절망?!

이 작품은 '사상 최강의 적과 싸운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걸 증명해 보이는 대목이 하나 있는데.
금사자 시키는 전설의 해적이란 명성 답게 압도적 파워로 루피 일행을 옥죄어 온다. 나미를 지키고자 전투를 벌이지만 첫 전투에선 놀랍게도 처절할만치 제압당하고 마는 주인공들. 지금껏 엄청난 적들과 상대하며 고전 안 한적이 있었느냐마는, 돌이켜 보면 이 땐 저마다 하나씩 붙들고 일기토로 싸웠다. 알라바스타에서 크로커다일과 그 심복들하고 결전을 벌였을 때도 그랬고, 하늘섬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여기선 밀짚모자해적단 중 다섯이 그 한명한테 한꺼번에 덤비는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도 여실히 절감하고 마는 그 위력. 
소년 만화(애니메이션)의 법칙 중 하나는 엄청난 상대, 그것도 악랄한 적의 존재다. 선악구도가 명확한 라인에서 주인공이 고생 끝에 그를 넘어선다는 레퍼토리는 세월을 넘어서는 왕도. 물론 이에 충실하기로 소문난 원피스지만 이번엔 그 강도가 한결 높아졌다. 



루피 일행도 역대 최강이다!
   
국내서 방영된 작품만 섭렵해 온 당신이라면, 아마 이 작품을 보고 현격한 시간차를 느꼈을 것이다. 2003년 5월 KBS로 첫 전파를 탄 TV판 본편은 현재 투니버스와 챔프, 재능방송 등 케이블 채널로 이어지고 있는데 바톤을 넘겨받아 최신편을 계속 더빙해 진행 중인 채널은 투니버스. 그러나 휴방을 거듭하면서도 7년간을 이어왔건만 아직 일본 현지의 진행본과는 시간차가 꽤 된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보면 처음 보는 동료가 둘이나 보일 것이다. 하나는 선박 및 무기 제조 전문가로 우솝과 포지션이 조금 겹쳐 보이는 프랭키. 며칠 전 투니버스로 첫 선을 보인 극장판 '에피소드 오브 초파' 편에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에피소드 오브 초파는 본편에서 이미 나왔던 스토리를 답습하고 있지만 설정이 달라져 있어 뉴페이스인 그와 아직 동료가 아니었던 로빈이 모습을 보이는 반면 비비는 제외됐다)

그리고 또 한명, 브룩. 국내 페이스에선 최근 들어 '음악가가 한명 있음 좋겠다'는 루피의 언급이 있었고, 그에 화답하듯 등장하는 동료가 바로 브룩이다. 두 캐릭터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로 전투 능력 또한 상당하다.

인원 보충으로 수는 아홉으로 늘었고 어느새 루피 일행의 관록도 늘어 현상금은 엄청 불었다. 루피 한 명에게만 3억베리가 걸린 상황. 따라서 그간 보지 못한 필살기 등의 연출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간차를 느끼게 하는 액션의 업그레이드가 기대치를 높일 중대 요소다. 

또 하나, 보다 보면 '배가 어째 좀 달라 보인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일본 본토에서도 화제가 된 스토리, 아세요?

원피스의 극장판은 지금까지 10개작이 나왔고 이 작품이 바로 그 열번째 최신작이다. 그러나 이 중 그간 우리나라서도 극장에 걸린 것은 2006년 개봉된 기계태엽성의 메카거병 하나. 올 2월 개봉될 이 작품이 두번째 개봉작이 된다. 나머지는 투니버스를 통해 케이블TV로 소개됐다. 8기와 9기는 이번작품 개봉과 연계해 이번에 투니버스에서 신작으로 소개했다.

스트롱월드는 원피스 월드의 전반을 놓고 봤을 때에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12월 12일 일본서 개봉된 본작은 이틀동안 1억3800만엔의 흥행기록을 세우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는 벼랑위의포뇨를 뛰어넘는 성적이다. 188개 개봉관 중 103개관이 전회 전석 매진이란 기록을 올리기도 했다. 3일째엔 100만 돌파가 이뤄졌고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이 이어졌다. 애니메이션과는 무관한 잡지 '맨즈 논노'는 신년호 표지를 루피로 장식했는데 창간 이래 24년의 역사 중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표지모델이 된 건 처음이라고. 

29일 째엔 흥행수익이 40억엔을 돌파했다. 한화로 약 518억원에 달하는 액수. 일본 전국 관객은 350만을 넘었고 지금도 흥행 기록은 착실하게 그 수를 불리는 중이다.

그리고 2개월만인 2월 11일, 한국에서도 개봉이 결정됐다.

제작에서도 화젯거리는 많다. 원작자 오다 에이치로가 참여한 첫번째 작품으로 영화 스토리와 크리에이쳐 및 코스튬 디자인, 총 제작 지휘를 맡았다. 지금껏 원피스 극장판은 오리지널 스토리(예로 메카거병이 있다), 그리고 본편의 일부 에피소드를 리메이크한 것(예로 에피소드 오브 초파)이 있는데 이 작품은 오리지널에 해당한다. 그러나 메카거병 등의 오리지널이 잠깐의 단편적 에피소드로 끝난다고 한다면, 이 작품은 그간 누차 언급된 거물과 연결된 만큼, 향후 본편 TV판에서 다음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해도 이상할게 전혀 없다. 전체 맥락에서도 갖는 가치가 크다는 말씀.   





5000대 8의 결투신이 있다

홍콩 느와르의 걸작 영웅본색2에선 대여섯 남짓의 주인공 일행이 머리수가 기백은 족히 넘을 악당 소굴을 초토화시킨다. 영화 짝패에선 100대 2의 싸움도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누가 애니...아니다. 원피스 아니랄까봐 5천대 8의 전투신을 넣어놨다. 실상은 5천대 9가 맞긴 하지만 일단은 한 명이 본대에서 빠져있으므로 5천대 8이라고 해 둔다. 물론 그림상으로는 5천인지 5백인지 셀 길 없으나 설정상으로는 5천명 맞다.

초반부터 육탄전은 무리임을 작가도 느꼈는지 초반엔 느와르로 시작한다. 각종 화기로 무장한 루피일행이 정장차림으로 불꽃쇼를 벌이는 것을 보면 홍콩느와르가 울고 갈 지경. 리얼리스트가 아닌 바이오렌스 로맨티스트라면 환영할 만 하다.

가끔 보면 이번에 개봉한 영화 아바타를 연상케 하는 거대 동물들과의 전투장면 내지 추격신도 등장한다. 스트롱월드라는 이름을 가늠하기엔 어려울 것이 없다.




성우 더빙 퀄리티는 대만족

한국 성우와 더빙팬은 기대감을 맘껏 부풀리고 극장을 찾아도 좋다. 강수진 정미숙 김승준 김소형 소연 박영남 김기현으로 이어지는 특A급 성우진과 재기 넘치는 신세대 성우진은 여느 때보다도 강렬한 열정으로 화답해 온다. 언론시사회장엔 나미의 정미숙 씨가 몸소 찾아와 작품 시사를 다녀가기도 했다.




출처 다음 영화 원피스 스트롱월드 동영상 게시판 


그리고 새로 영입된 두 멤버, 브랭키와 브룩엔 각각 투니버스의 이주창, 최승훈 성우가 투입됐다.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를 시연해 보인다. 브룩의 '요호호'를 담당한 최승훈 성우가 개인적으로는 굿초이스. "전 다질 살이 없는데요?"는 꼭 들어봐라.


원피스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인가

작품에선 오리지널 캐릭터인 전기새(이름 까먹었다)가 등장하는데 이 또한 매력포인트. 든든한 아군인 이 새는 다른 거대동물들에 비해 몸집은 작지만 강력한 전기를 무기로 삼아 일행의 파트너에 부족함 없는 실력을 보여 준다. 특히 루피와의 콤비는 화려한 공중전을 선사한다. 금사자 시키와의 복수전에서 루피의 1대1 맞대결을 서포트하는데 작품의 클라이막스로 손색없는 액션이 수분간 펼쳐지니 기대해도 좋다. 루피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그 땐 배가 좀 고팠었다고!"

작품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나미가 동료들에 전달했던 메시지. 그러나 진정한 메시지는 맨 마지막에 들어 있다. 그 메시지는 정말로 작품 마지막에 들려오는데 꽤 괜찮은 매듭을 지어 보인다.

원피스는 연애 구도가 없는 작품으로 유명한데, 어째 루피와 나미는 동료 이상의 뭔가를 기대케 하는 장면이 계속 된다. 작품 초반엔 나미가 본래의 해적무리에서 루피의 구원으로 자유로워졌었지. 당시 "나미 넌 우리 동료야!"란 외침에 그녀는 감사의 눈물로 쓰러지고 말았었다. 이 작품은 그것의 오마쥬이기도 하다. 오랜 팬들에 있어 각별한 추억을 선사하는 작품인 것.

마지막으로, 오다 에이치로가 언젠가 "내 작품은 리얼리즘을 근간으로 한다"고 밝혀 폭소를 자아낸 적이 있다. 원피스를 생각 안 할수가 없었나 보다.

그런데 악마의 열매라던지 판타지성 다분한 소재, 5천대 8의 전투신 등은 그렇다 쳐도, 내용의 본질만큼은 확실히 실제의 것을 갖추고 있다.

아무리 무모해 보여도 죽어라 덤비면 길이 열린다는 거 말이다. 죽어라 덤비는 놈이 승자라는 진리는 정말 리얼리즘을 근간으로 한 것이라 믿고 싶다. 어쩜 그 바람이야말로 판타지일지 모른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융합이라는 것을 원피스의 또다른 면에서 찾아본 결론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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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송지나 작가 신작 미투데이 공개오디션 문전성시, 2주새 5600명 돌파


'명품드라마의 마이더스' 송지나 작가의 인터넷 공개오디션이 2주만에 6천명에 달하는 모집자를 모으며 문전성시를 이뤄 눈길을 끈다.

송지나 작가는 지난 12일부터 미투데이를 통해 차기작 '왓츠업 vol.1'의 주연 1명, 조연 5명 총 6명을 선발하는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http://me2day.net/me2/channel/dramawhatsup)

26일 현재 공개오디션 지원자 게시판엔 56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벌써부터 1천대 1에 육박하는 경쟁률을 나타내고 있는 것. 마감시한은 이달 말일로 아직 닷새가 남았다. 막바지 지원자들을 예상한다면 카운터 페이스는 더 가빠질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신작 왓츠업 vol.1은 국내최초 캠퍼스 뮤지컬 드라마를 표방한 드라마로 뮤지컬학과에 입학한 스무살 새내기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 송지나 작가는 82년 MBC '호랑이선생님'으로 데뷔, 카이스트, 모래시계 등 숱한 당대 걸작을 쏟아내며 작품성과 흥행성의 두마리 토끼를 잡아 왔다. 이번 오디션의 성황은 오디션에 이렇다할 자격제한을 두지 않은 점과 더불어 이러한 그녀의 명성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송 작가는 지난해 12월 31일 자신의 미투데이를 개설, 이번 오디션과 맞물려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을 펼치고 있다. (http://me2day.net/jinas0912/) 이 작품의 기성 배우 캐스팅 확정 소식이나 이번 오디션에 관한 새 주문 등이 업데이트 되면 300~400여개의 댓글이 오르는 중. 오디션 만큼 미투데이도 문전성시인 상황이다.

그녀는 19일 미투데이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디션에 참여해 줘 팀이 비상"이라 밝히며 신청자들에게 본인 미투데이 대문에다 프로필 사진을 걸어달라 요청하기도. 오디션 일정은 31일까지 내정된 1차 오디션으로 100명을 선발한 뒤 내달 2, 3차 선발로 50명, 다시 20명으로 옥석을 추릴 계획이다. 3월까지 이어지는 최종 면접 및 네티즌 투표로 여섯명이 확정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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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KBS 라디오 연기대상, 목소리의 그 주인공들




18일, KBS 라디오홀. 2009 KBS 라디오 연기대상 중 성우들이 실력을 뽐내는 한 장면.

아래 영상을 보면 얼굴을 몰라도, 캐릭터 연기에 순간 순간 "어! 그 사람!"하고 무릎을 칠 법한 상황이 연속된다.






난 매년 이 연말 시상행사를 찾는다. 여타 방송계 시상행사와 달리 언론 노출이 적은 반면 팬들 사이에선 궁금해 마지 않는다. 정보가 아쉬운 사람들에 있어 꽤 필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자평해본다.

실제로도 이 시상식은 꽤 재밌다. 본 메뉴인 시상 이상으로 '덤'이라 할 수 있는 성우들의 축하공연이 눈길을 끈다. 그간 목소리로만 여기저기서 접했던 주인공들이 천의 목소리로 시시각각 변신하고, 때로는 정말 '재주꾼'이다 감탄할 만큼 놀라운 재치를 보여준다. 여타 지식이 없는 이가 방청석에 앉아있다보면 '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하며 놀랄법한 일이 줄기차게 벌어진다. 물론 팬들 입장에선 어느 연예인 팬클럽 부럽지 않을 환성을 그들에 선사할 간만의 기회다.



샤론스톤에서 이젠 짱구 엄마로 더 친숙한 강희선 성우, 포켓몬스터의 로켓단 로이와 윌스미스 전담으로 유명한 김일 성우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

한편으로는 과거 라디오 전성시대 때 영웅이었던, 그러나 비디오 시대인 지금은 그 때와 상황이 또 다른 그들과, 그들의 계보를 잇는 현 세대의 어우러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 씁쓸하면서도 또 달콤한 여유가 묻어난다. 지난 해의 경우는 60대의 방유성 성우를 비롯 여성 성우들의 '노바디' 공연이 UCC를 타고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평소엔 외화나 애니메이션 스크린 뒤에서 목소리로만 접하던 이들이기에 거기서 받는 인상은 한층 더 강하다.

이번엔 10분짜리 동영상에 담아낸 '성우탐구생활' 공연의 한 부분을 감상해 볼까. 케이블 채널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남녀탐구생활'의 나레이터, 서혜정 성우가 후배성우들과 함께 공연한 무대다.




  
간만에 성우, 그 자체가 수면 위에 올라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남녀탐구생활. 그러나 그 주인공인 서혜정 성우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앞에서 몸으로 웃겨 주는 성우들 역시 존재감이 막강하다. 특히, 문외한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대표적인 대중적 스타 강수진 성우는 '최강수진'이란 새 별명을 얻으며 제대로 팬서비스를 해 보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홍패밀리' 홍선영 홍성헌 홍승섭 홍시호 성우 4인방은 안익수 음향효과 기술자와 함께 열연한다. 같은 홍 씨지만 진짜로 가족들은 아니다.

축하공연에 비해 시상은 시간적 비중이 적다. 그러나 그간 성우계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에 있어선 정말 드라마틱한 순간이다. 순서는 신인상부터 수여된다.



남자 신인상은 33기 김태영 성우에게 돌아갔다. 여자 신인상은 33기 최정현 성우. 김태영 성우는 함께한 동기들과 영광을 나눴고 최정현 성우는 끝내 울음보를 터뜨린다.


 
 
공로상은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대모 격인 최수민 성우에게 돌아갔다. 과거 라디오 드라마 '아차부인 재치부인'에서 명성을 떨쳤고, 렌탈 비디오와 유선방송 전성시대였던 80년대엔 '태양의 사자 철인28호'와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을 비롯 숱한 애니메이션, 특촬물 비디오 더빙물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해 2030세대에 짙은 향수를 남긴 장본인이다. 한동안 출연이 뜸했지만 최근 케이블 애니메이션 채널 챔프에서 '못말리는 3공주'로 다시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한편 이 날 수상 자리엔 연기자 겸 가수인 아들 차태현 씨가 함께 올랐다. 평소 성우들 모이는 자리에 자주 축하공연을 맡는다고.

그녀는 수상 소감에서 "90년 대상을 받고 이젠 공로상까지 받게 됐다"며 기쁨을 표시했다.


수년째 진행을 맡고 있는 김영진, 김옥경 성우 콤비. 이 날은 유독 김영진 성우가 선배 김옥경 성우의 화를 돋군다. "전 신인상을 수상했고 엔터테이너 상도 받았습니다"라며 무관의 선배를 건드리는 그. 결국 그녀는 "너 몇기야?"하고 묻는다.

"24기입니다."

"제가 선배입니다."(20기다.)

한 원로 성우는 "이기는건 그거밖에 없지"라며 웃고 말았다.

그런데 이건 복선이었다. 올해 여자 최우수 연기상은 바로 그녀였다. 작년에도 "왜 난 상을 안 줄까요, 언젠간 받겠죠"라며 투덜대던 김옥경 성우는 드디어 한을 여기서 풀었다.




수상소감. 그녀는 "우는 아이 젖 준다고, 계속 상 달라고 했더니 결국 받는다"고 웃음을 유도한다. 몇년간 수상소감을 준비했다는 그녀, 특별한 수상소감을 이어가다 결국엔 '눈물이 나네요'라며 급히 소감을 정리한다. 그간 '강철의연금술사'에서 러스티, 슈렉의 피오나 공주, 위기의 주부들에서 나탈리 등 애니메이션과 외화, 라디오 드라마와 DJ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던 바 '이미 준비된 후보자'였고 결국 올해 소원을 이뤘다.



남자 최우수 연기상은 홍시호 성우에게 돌아갔다. 슬램덩크의 강백호, 홈쇼핑의 '39900'원, 짱구는못말려 극장판 '태풍을 부르는 장엄한 전투', 게드전기, 더 락의 니콜라스 케이지, 이누야샤의 나락 등으로 유명한 그는 "꼭 받고 싶었던 상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 꿈을 이뤘다"며 감격을 표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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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드라마 이렇게 만들어진다! KBS 성우대상서 시연



18일 2009 KBS 라디오 연기대상 중.

 

성우 홍시호, 홍선영, 홍승섭, 홍성헌 4인으로 구성된 '홍패밀리'와 음향효과를 담당하는 안익수 씨가 라디오드라마 연기의 녹음 현장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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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반게리온 파, 에바의 새 엔딩 위한 폭주 개시!
 - 14년만의 스토리 뒤집기

   
 
   
 

 

1장 - 언론시사회 종료 후, 잡담 하나.

19일, 에반게리온 파 언론시사회가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한 나는 곧장 자리 하나를 요청했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고, 그렇게 정식 개봉에 앞선 새 극장판 파를 접했다.

100여분의 관람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다가 묘한 우연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TV판의 그 유명한 오프닝 잔혹한 천사의 테제가 피아노 솔로로 흘러나오는 것. 본래도 경쾌한 멜로디였지만, 그 때 내 귀엔 이 곡이 매우 희망적이고 밝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품 감상 직후의 내 감정이 필시 작용했을 것이다.

 

2장 - 뒤집기 한판, 파괴는 지난 스토리의 완벽한 전복을 뜻했다

   
 
   
 

 

이번 작품의 메인 포스터. 처음 나간 것은 서브 포스터다. 언뜻 봐선 파괴라기 보단 묘하게 장난스런 스케치인데, '파괴는 진화의 시작이다'라는 문구가 세로로 걸렸다.

작품이 파괴적이라서? 아니다. 이는 기본 에바 월드의 파괴를 뜻하는 것이었다. 아주 완벽하게 부수기 시작한 파. 지난편 '서'에선 그 전작과 그다지 차를 못 느꼈을 사람이라도 이번엔 롤러코스터를 타는듯 아찔할 수 밖에 없다.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 이번 작품은 극장판으로 이어지는 새 에바 시리즈 4부작의 두번째에 해당한다. 서에서 리모델링된 에바의 골격을 매끈히 보여줬다면 이번 파트에선 드디어 다듬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라인이 제시된다. 기존 것은 산산히 부서지고 떨어져 나간다.

혹 기존의 1995년도 TV판과 이후 극장판의 엔딩을 좋아했는가? 

그 반대라면? 이번 극장판은 반드시 체크해 볼 사안이다. 과거 결말이 맘에 안들어 완전히 새롭게 쓰여질 패러랠 월드를 꿈꿨던 팬이라면, 이번 파는 그 희망의 신호탄이다.

 

3장 - 신 에바 극장판, 상대는 다름 아닌 14년전 자신

본 작품에 앞서, 과거 에반게리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

에반게리온이 나오기 직전,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침체했었다고들 말한다. 90년대의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산업적으로는 어려웠다는 이야기. 이는 버블 경제 붕괴니 뭐니 하는 일본 경제 상황과 나아가 세계 전반의 상황까지 이야기가 확대되기도 한다. 

잠시 둘러볼까. 90년대를 전,중,후반으로 나눠봤을때 전반은 단연 세일러문의 세상이었다. 중반이 바로 에반게리온의 폭주 시대. 후반의 주자는 글쎄... 가오가이거, 슬레이어즈 정도? 이는 2,3년의 시간차를 넘어 한국에서도 열풍을 몰고 왔던 작품들. 

그렇다면 에반게리온이 출현했던, 혹은 이를 전후한 94, 95, 96년 당시가 '에반게리온 독주시대'를 허용할 수 밖에 없을 만큼 경쟁작이 부재했던 시대냐.

천만에. 그 땐 그 어느 시절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양질에 있어선 르네상스였다. 같은 로봇물만 하더라도 그 시기엔 기동신세기 건담W, 천공의 에스카플로네가 있었다. 이들은 현재 항간에서 '에반게리온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애니메이션 매니아가 있을 정도. 그러나 에바와 달리 이들은 당시 제 대접을 못 받았다. 너무나 강렬했던 에반게리온 열풍 때문에 희생된 것이라는게 팬들의 이야기다. 대신 이 두 작품은 시간이 흐른 뒤, 방영당시에 받지 못한 대접을 비로소 돌려 받았다고.

올드 건담 팬들에겐 여전히 껄끄러운 윙건담이지만 캐릭터 완성도나 '건담 군'을 떠난 독자적 평가에선 꽤 개성적이고 재밌는 작품이었다는 호평을 받는다. 에스카플로네는 근미래의 리얼한 에반게리온과 정반대 노선인 이공간 판타지 로망스를 탑재, 비록 방영당시엔 에바에 기가 눌렸으나 그 작품성에 있어선 90년대 대표작에 올려놔도 전혀 손색없는, 작품성 평가에 있어선 절대강자다. 이 두 작품과 에바, 이렇게 명작 로봇물이 동시간대에 공존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롭다.

그럼 그보다 강력한 광채를 내뿜어 이 둘은 물론 당시 업계 전반을 '묻어버렸던' 에반게리온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반향을 얻었다는 것일까.

 

   
 
   
 

당시 현지 상황을 직접 체험할 수 없었기에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답 나오잖은가.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연속으로 새 작품이 나오며 '사골게리온'이란 웃지못할 별칭까지 붙어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는 계보. 이것은 건담과는 또다른 의미다. 건담은 계속해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이야기로 계보를 잇지만 에반게리온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패러랠이던 뭐든 간에 에바는 단일 세계, 같은 캐릭터와 공간의 세상으로 이처럼 오랜 세월을 휘젓고 있다. 

이젠 '키덜트'라 불리게 된 세대에 있어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 주시할 수 밖에 없는 미결의 세계. 그리고 이는 일본 현지 뿐 아니라 국내 애니메이션 팬에게도 동일하다. 90년대 중반, 고교시절을 보내던 나의 세대는 애니메이션 이야기 할 때마다 에바가 출발점이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한 때 많이 보여지던 애니메이션 수입 관련품 전문 샵은 단연 에바로 도배됐다. 한국엔 공중파로 정식 방영된 적도 없건만 그 존재는 강렬하게도 기억에 새겨졌다. 인터넷 시대도 아니었건만 편집된 비디오판 렌탈, 정식 라이센스판 코믹스 판매 개시 즈음엔 어떤 경로를 통한건지 많이도 이 작품을 원판으로 섭렵했었다.

센세이션. 현지에서 에반게리온의 당시 인기는 그렇게 요약된다. 첫 방영땐 비교적 조용히 넘어가다 입소문을 통해 불길이 확산됐다는 점에 있어 퍼스트건담과도 비슷하다. 침체기의 애니메이션 업계를 이 작품 하나가 뒤집어놨다는 설명은 현지 상황을 볼 수 없었던 사람으로서 궁금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후엔 이 작품의 센세이션이 가시면서 다시 업계 전반을 숨죽이게 만들었다고 하니, 이건 이거대로 또한번 그 파괴력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이같이 애니메이션의 전설을 만든 안노 히데아키 사단이, 다시 새로운 센세이션에 도전한다. 과거의 것을 완전히 허물고 뉴 에바 월드를 세우겠다는 야심. 과거의 창조물이 너무도 대단하기에 무모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무리가 아니다. 이번 극장판 시리즈 개시는 이미 성역을 이룬 에반게리온에 에반게리온이 도전하는, 매우 흥미로운 구도다.

과연 90년대의 에바전설을 2000년대의 에바가 깰 수 있을까. 참고로 나는, 이번 작품을 보고서 매우 낙관적으로 점치게 됐다.

  

4장 - 최신예 에바 출격, 화려한 영상미에 새로운 오마쥬를 담아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에 들어간다. 먼저 이야기할 건 작품의 기술적 면과 특유의 서비스다. 

이번 작품의 기술적 진보는 한눈에 확인된다. 아무래도 역시, 십년 하고도 반십년의 세월이 흐른데다 극장판이다 보니 영상의 퀄리티는 에바 시리즈 중에서 도드라질 수 밖에. 새롭게 디자인된 사도의 압도적 모습이나 군 병기, 도시 전투는 확실히 과거 것보다 존재감이 강하다.

하지만 가장 감탄했던건 에바가 달리는 장면이다.

   
 
   
 

떨어지는 폭발형 사도를 받기 위해 달려가는 초호기. 기존에도 매우 스피디한 움직임을 보였던 인형결전병기 에반게리온이지만, 이 작품에선 또 한번 장족의 발전을 보여 빠르고 박력 넘치는 액션을 펼쳐보인다. 인간의 그것과 전혀 위화감없는 모션, 마치 우사인볼트의 달리는 모습을 가져온 듯 리얼한 움직임이 지상전에서 박력있게 펼쳐진다. 이는 마치 마징가 제트가 초반부 도로를 달리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수십미터의 거인이 달리자 흙먼지가 일고 주변의 차량이 날려가는 모습은 상당히 임팩트하다.

그런가 하면 에바가 하늘에서 공중 액션까지 펼쳐보인다. 그렇다고 비행 능력이 추가된 것은 아니다.

로보캅이 3편에서 하늘을 날자 논란이 다분했었다. 하지만 에바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인간과 한없이 가까운 존재, 인간의 움직임을 자연스레 재현해 보이고, 인간이 날지 못하는 것까지 꼭 닮은 로봇이다.

 

   
 
   
 

그럼 대체 2호기의 저 모습은 뭐란 말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공중 강하다. 스카이다이빙처럼 하늘에서 강습해 내려오는 것.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액션을 팬들에 선물한다. 대단히 즐거운 볼 거리다. 

그리고 가만히 살펴보면, 기존의 에바가 지녔던 '미덕', 타 작품들에 대한 오마쥬가 신작에서도 여전함을 알 수 있다.

과거에도 마징가나 건담 등 전설적 로봇물의 것을 빌려왔던 에반게리온이다. 앞서 초호기가 달리는 모습은 다시 한번 마징가가 육중한 몸체로 보여주던 바디 액션을 연상케 한다. 그럼 저 2호기의 전투는?

공중에서 강습하면서 2호기는 숱한 적탄을 빙글빙글 피하며 라이플을 연사한다. 그 모습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전매특허, '이타노 서커스'의 그것이다. 80, 90년대의 그것을 기억하는 이라면 경탄과 반색을 교차할 선물.

 

5장 - 스토리의 재구성, 설마!?

스포일러 때문에. 입이 근질해도 매우 조심스럽게, 표면적인 것만 한해 썰을 풀어 보겠다.

난 사실 골수 에바 팬은 아니다. 그렇다고 문외한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참으로 어정쩡하다. 작품을 보기는 봤는데, TV판 1편부터 최종까지 순서대로 찾아서 감상한 것은 아니고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해 주던 편집본 더빙판을 그냥 그때 그때 뒤죽박죽으로 봤을 뿐이다. 그래서 내 기억에 에바는 팬들이 지각하는 전체적인 골격이 아니다. 그 때 그 때 에피소드별로 각자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옴니버스의 조각이다. 리츠코 박사가 어머니에 대해 '과학자로선 존경했고 엄마로선 실격이며 여자로선 증오한다'고 미사토에게 밝히던 것이나, 미사토가 초호기의 신지에게 자기 목숨을 맡기고 특수임무를 수행하던 순간 등이 에바의 전체적 흐름보다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한편 지금껏 '진짜 엔딩'으로 꼽히던 과거 극장판은 나름 몰입해 확인했다.

이런 내가 한마디로 요약한 에반게리온은 '애니 역사를 통틀어서 손꼽힐 암울한 작품'이다. 상당히 묘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결국은 배드 엔딩. 뭐 이에 대해선 반론이 많지만, 여튼 내게 있어선 주요 인물의 잇따른 죽음, 그리고 세계는 종말(직접적으로 보여진 현세상의 모습은 '일단')을 맞는다는 점에 있어 암울 그 자체. 

그런데 이게 또 바로바로 몸에 체감되는 게 아니고 뭐랄까... 마치 아주 난해한 철학적 소설을 읽는 듯 느낌이 이상해서 복잡미묘한 '찝찝'함을 전달받았단 말이지. 쉽게 말해 매우 비대중적이고 불친절했던 애니계의 걸작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 처음엔 그저 과거 작의 답습이나 잘 만든 에디터본이 아닌가 했던 예상을 깨고 이 사람을 아주 즐겁게 만들어 준다. 어쩜, 기존의 결말과의 상이함은 물론이요, 그 뒤에 남는 분위기의 맛조차도 아주 달라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남긴다.

난 블랙커피보다 마끼아또가 좋다. 물거품이 되어 여운을 남기는 명작보단 잘먹고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준 명작이 더 좋단 말이다. 

 

6장 - 명확해진 인물간 소통과 변화, 그리고 남자다워진 히어로

   
 
   
 

기존의 것에서 탈선, 새로운 뭔가를 기대케 하는 요소가 대체 뭘까. 물론 그것은 각 캐릭터다. 이번 장은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이자, 기존 에바 월드와 현행의 것을 뒤트는 절대 변수이자, 매우 반갑고 즐거운 부분을 소개하는 자리다.

먼저 조커부터 소개한다.

기존엔 존재하지 않던 신 캐릭터 등장. 작품 맨 처음에 나오는 바람에 한순간 기존과는 전혀다른 사이드 스토리가 아닌가 했다. 물론 그건 아니고, 뭔가를 숨긴 채로 본래 이야기에 은근슬쩍 섞여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 덕에 일단 이번 편에서는 모두가 한숨 돌리는 상황을 맞는다.

과거 TV판의 1편부터 6편까지의 진행을 담았던 첫번째 시리즈 '서'. 그리고 이 작품 '파'는 이를 이어 아스카가 2호기와 함께 등장하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TV판 7편부터의 시작. 그런데 여기에 그녀도 슬쩍 다른 루트로 승차한다. 이 소녀가 어디까지 기존 인물들과 관계를 맺을지는 모른다. 그녀는 조커다. 이 작품을 중대한 순간 어디로 확 이끌지 모를 변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신 캐릭터다.

 

   
 
   
 

또 하나, 매우 괄목할 것이 있다. 레이와 신지, 이 두 주인공이 과거에 비해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이 됐다.

레이는 이 작품에서 구세주로 떠오른다. 사도와의 싸움이 아니라, 각 인물들의 얽히고 섥힌 갈등을 풀어주고 해갈하는 '인간의 다리'란 점에 있어 기적의 여신으로까지 기대감을 부풀게 한다. 사실 세계 존망을 건 로봇 전투 이상으로 신지를 비롯, 아이와 어른이 타인과 교감을 넓혀가는 성장물로서 시선이 가던 에반게리온 아니던가. 

좀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스스로 무언가 새로운 운명을 찾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녀는 신지와 겐도 두 부자와 미사토, 아스카의 어두운 면까지 어루만지려는 시도를 한다. 아주 소박한 계획이지만(실제 감상의 재미를 위해 자세한건 안 가르쳐 준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선 과거 에반게리온의 팬들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일일수도 있다. 어떻게 귀결될진 모르지만, 현시점에선 '나 같은 사람'들에 있어 일말의 희망과도 같다.

 

   
 
   
 

 

신지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 초반부터 조금은 진전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레이를 통해, 또 아스카를 통해, 그리고 파에서 멋지게 등장한 카지를 통해, 자신과 동질감을 나눠가진 미사토를 통해, 동경할 부분을 지닌 친구들을 통해 점차 보완되어 간다.

이번 작은 과거작의 중대 포인트였던 '3호기 사건'을 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신지가 괴로워하는 모습까진 그대로 답습한다. 그러나, 상황은 기존 것과 매우 달라져 있다. '아직 등장할 시기가 아닌데?' 싶은 카오루가 모습을 보이고, '중대한 설정' 하나가 달라졌다. 그리고 괄목할 부분, 바로 이 사건에 반응하는 신지의 각성이다. 분노를 토하며 농성전을 벌이는 장면은 이 소년을 다시 보게 만든다. 비록 어렵사리 진전됐다 다시 뒤틀려버린 인간관계의 결과지만 한편으로는 소심쟁이 신지가 이토록 자기의 격한 마음을 분출한다는 점에 있어 흥미롭다. 그리고 이탈했던 자신을 다시 작품의 히어로 자리에 돌려놓을 때, 이 소년은 매우 남자다워져 있다.

작품 종반엔 한순간, TV판 이상의 슬픈 흐름을 예상케 하는 '페이크'가 걸려있다. 그런데 이것에 신지가 몸소 부딪힌다. 내가 알던 14년전 신지는 운명에 휘둘리는, 저항조차 그것의 내부로 국한된 것이었는데 이 작품에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내는 용사다. 신지는 이번 신 시리즈의 새로운 종결에 있어 가장 기대되는 인물. 입이 근질하지만 스포일러 때문에 그냥 궁금증만 유발하는 선에서 이만.

하나 더, 이들 인물간의 상호작용을 촉진시키는 것은 이전 작에 비해 이들의 소통과 관계 변화가 매우 명확해진 점에 있다. 여러모로 안타깝고 아쉽고, 또는 한발 늦은 깨달음으로 씁쓸한 여운을 남겼던 십수년전과 달리 이번 작은 한층 서로간의 감정 변화가 알기 쉽게 표출된다. 물론 이들은 서로의 부족했던 커뮤니케이션과 이해를 보완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진실성 있게 움직인다. 특히 여러모로 알기 어려웠던 겐도는 여기서 신지, 레이를 통해 함께 진보의 발걸음을 맞춰나간다. 아스카도 미사토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건 즐거운 것이구나'하고 웃는다.

'가족애'를 비롯, 사람과 사람의 연은 에바에 새로운 기적을 가져올지 모른다.

 

7장 - 신지와 동년배던 나, 이제 미사토와 동년배가 됐다 

   
   

살짝 모습을 드러낸 카오루. 차회 'Q'의 예고편에서 의미심장한 대사와 함께 강림하는데 출연비중이 상당히 늘어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5호기, 6호기, 8호기... 기존작엔 없었던 에반게리온이 이 작품에서 언급됐고, 또 예고편에서 언급된다. 메카닉 매니아들에 있어서도 열광할 만한 포인트.

에바는 희한하게도 내게 인간적 감성을 호소한다. 이 작품이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나는 신지를 비롯 이들 칠드런과 거의 같은 나이였다. 그리고 이젠, 어른의 매력을 뽐내던 미사토 누나와 말을 놓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실로 함께 나이를 먹어온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 나이와 각 연령층엔 '세대'라고 하는 재밌는 성장 구분이 있다고 하는데, 난 저들과 비했을때 어떨까.

어느덧 신지와 같은 워크맨 세대에서 미사토처럼 캔맥주를 들이킬 수 있는 젊은 어른의 세대까지 워프한 나, 그 때의 에반게리온과 지금의 에반게리온을 함께 들여다보며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

다음 작품에서, 난 또 한번 그 다음 작을 즐겁게 기다릴 수 있을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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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백야행, 슬픈 괴물의 운명


[리뷰] 백야행, 슬픈 괴물의 운명



괴물이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추적하는 자들은 사라져버린다. 세상이 규정한 악. 용사는 포기 않고 끝까지 추적한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낸 괴물. 용사는 궁지에 몰린 괴물에게 하고픈 말을 한다.

"......"

조금은 뜻밖일지 모르는 이야기를.

이상, 영화 백야행을 말했다.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괴물의 탄생과 공포의 역사, 용사의 추적과 결말... 슬픈 괴물의 이야기

스포일러가 아니다. 미리 알았다고 해서 영화 내용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되진 못한다. 어쩜 보고 난 뒤에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손을 내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기엔 불을 내뿜는 괴물이나 칼 든 용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내린 영화의 요약일 뿐. 함께 영화를 봤던 한 남자가 물었다. 이번 영화를 다섯글자로 표현해보라고. 난 거리낌없이 '괴물의 비애'라고 말했다. 

괴물에 대해 다시 탐구해보고픈 영화다. 우리가 겁에 질리고,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괴물. 그런데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 대목에서 용사는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 그렇다면 다시 괴물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괴물은 본디 '괴물'이 아니었다. 약하고 여렸다. 먼저 해한건 세상이었다. 세상은 악으로 규정한 괴물이지만, 실은 괴물에게 있어 세상이야말로 악이었다. 결국 괴물은 살아남기 위해 진짜 괴물이 됐다. 

처음엔 자기를 해하던 자만 끝장내려 했다. 그러나 나중엔 정말로 살아남기 위해 죄없는 자들까지 해쳐야 했다. 자신을 추적해 오는 자들을. 결국은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다. 그냥 그 때 한번으로 끝났어야 했을 것을, 이젠 정말로 거대하고 포악한 공포의 괴물이 되고야 말았다.

용사는 그 탄생의 시점에서부터 괴물을 알았다. 그러기에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용서는 못 한다. 죄없는 추적자들을 해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삐걱거린 운명은 멈추지 않고 원치 않는 살육을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안타깝지만 그는 심판해야 한다. 게다가 소중한 것을 그만 제물로 바치는 과오까지 범했기에 놓아줄 수는 없다. 슬픈 운명의 괴물이고 또한 서글픈 운명의 공동체인 용사다.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감상을 해칠 일을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오히려 궁금하다. 영화 감상 후 몇사람이나 이 말을 이해할지조차 난 넘겨짚을 수가 없다.



섹스는 도구와 가학일 뿐... 사랑엔 섹스가 없는 영화


이후에야 알았다. 영화에 베드신이 있다는 정보, 그리고 캐스팅 때문에 이전부터 화제가 됐던 영화임을. 손예진과 고수의 베드신을 예상했다가 그렇지 않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 이들의 촌극도 있었다.

확실히 영화엔 정사 장면이 있다. 고수도, 손예진도 각자 다른 파트너가 있다. 잿밥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다만, 고수의 근육질이라던가 뜻밖의 누군가를 통해서 보여지는 일정 수위에 만족하는 사람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여기서 보여지는 정사 장면은 단순히 눈요깃거리로만 그치진 않고 뭔가 이유(구실이던 납득할 이유던 간에)를 담고 있다는 거.

생각해 볼 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섹스엔 사랑이라는 본질이 전부 배제되어 있다는 점. 영화에 나오는 정사장면이란 죄다 '도구' 아니면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네거티브하거나 그냥 단편성에 머무는 것들.

그랬다. 약자를 희생시키는 가학. 아니면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서만 벌이는 무감정의 행각. 그도 아니면 역시나 허무하고 의식적인 것.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매우 피폐해진다. 

어긋났을지언정 진정으로 서로를 원하는 이들은 정작 이와 무관하다. 서로 다가가지도 못한다. 일그러졌지만 그래도 영화 속에서 '멜로'라고 할 수 있는 '두 괴물'의 사랑엔 어떠한 베드신도 없다. 하긴, 어쩜 설령 이뤄졌다 해도 그들은 영원히 살은 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둘의 평생에서 그것은 자신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잔혹한 행위일 뿐이었다.   

혹자는 잿밥에 혹해서 영화관에 들어왔다 뜻밖에도 다소 철학적 관념을 들고 돌아갈지 모르겠다. 그것도 영화가 선사하는 생각할 거리다. 뜻밖의 선물, 나쁘지 않다.
 



스타들의 무난한 캐릭터 소화
 
사실 연기자들에게 연기력이 어떠니 하고 평하는 건 개인적으로 가장 껄끄러운 영역이긴 한데,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느낀 바를 풀어본다.

이미 검증받은 배우 한석규 씨의 연기는 무난하고 편안했다. 특유의 편안한 화술에서 시작되는 그의 감정발산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 중 단연 첫째다. 평소와 달리 폭삭 늙은 모습으로 등장해 순간 놀랐긴 했는데, 시사회에서 본 그의 모습은 건재하더라. 한석규의 지난 발자욱을 봤을 때 흥미로운 것은 화이트컬러에서 블루컬러로의 변신. 커피향 물씬 풍기는 곳에서 안경 너머의 시선. 시대를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배용준과 마찬가지로 한류 스타 대열에 들었을... 실례했군. 이미 쉬리를 통해 이름을 일찌기 알렸구나. 정정한다. 한류 중에서도 '청춘 스타'로서.

이 영화에서도 그는 거친 형사역을 연기한다. 그러나 쉬리의 OP요원이 그래도 화이트컬러의 엘리트였다면 이 영화의 한동수 형사는 거친 삶에 쩔고 찌든 전형적 블루컬러다. 욕도 잘한다. 다만 그를 둘러싼 무겁고 공허한 안개는 매우 신비한 매력을 부여한다. 완벽치 않은 것은 캐릭터도 물론이요 작품 속 선악구도도 마찬가지지만, 여하튼 이 작품 속 인물들 중엔 절대선에 가장 가까운 남자.

고수 씨는 더욱 멋있어졌다. 영화 도중 어느 미남자(?)가 '얼굴 기억하고 말고, 나보다 못생겼어'라고 회자할 땐 객석의 기자들이 그만 폭소를 터뜨리더라. 확실히 그 말 끝나자마자 클로즈업되는 그의 얼굴은 조각상같다. 물론 얼굴만 갖고 들이대진 않는다. 우수에 젖은 살인마의 매력은 그저 미남이란 이유만으로 성립되진 않는 것. 영화 흐름에 무난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아파도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는 미모의 괴물.

또 하나의 괴물인 손예진 씨 말인데,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인상 깊게 바라본 연기자지만 솔직히 그간 보여준 그 특유의 화술만큼은 뭐랄까, 개성이라 하기엔 다소 걸리는 어딘가가 있었다. 굳이 그녀의 연기에 흠을 잡자면 그 말투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 거슬리던 부분이 많이 닦여졌다. 청초해보이는 이미지에 잘 맞는 차분한 말씨. 그러나 실은 얼음장같은 마음을 숨기고 모든 것을 계획대로 진행시키는 악역 캐릭터를 살렸다.   

손예진의 유미호는 악녀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흥미롭다.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는데다, 하나하나 자기 계획대로 짜맞추어가며 사람을 자신의 포로로 만든다. 자신을 의심하거나 적대시하는 자는 심리 함정을 파 밀어넣은 뒤, 끝내 마음을 얻고야 만다. 진상을 알았다면 경악하고 말 일을 처연한 천사의 얼굴과 육신으로 행한다. 남녀 가리지 않고 벌거벗은 몸으로 상대를 움켜쥐는 것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무방비도시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뒷맛 씁쓸한 악녀를 맡아 고군분투했다. 다만 무방비도시의 색기 어린 악녀와는 전혀 다른 이중의 여인이다. 하얀 어둠 속을 걷다라는 작품의 부제는 그녀를 위해 준비된 것인가 보다. 



인상깊던 조연들, 그 때문에 양날의 검이 되는 역효과도 낳았다

주연 3인방 못지 않게 조연들의 캐릭터도 인상이 깊었다. 고수를 유혹하던 미연 역 윤다경 씨나 누군지 결국 이름을 알지 못한 선글라스 젊은 형사, 역시 이름을 모를 한동수의 후배 형사이자 현시점의 서장, 개인적으로는 손예진 씨보다 더 눈길이 가던 시영 역의 이민정 씨, 요한 어머니 역의 차화연 씨 등은 다들 자기 자리에서 빛을 모았던 작품의, 훌륭한 조연이란 이름의 재료들이었다.



맞다. 잠깐이었지만 이지아를 유미호로 이끌었던 이름모를 새어머니도 인상에 남는다. 되돌아보면 이 작품, 여러명의 어머니를 보여준다. '괴물'을 키웠다 끝내 먹혀버린 자업자득의 어머니, 일그러진 십수년에서 '그래도 나 역시 어머니니까... 이해해줘요'라며 괴물과 함께 연민을 나눠갖는 어머니, 괴물을 어쩜 구원해 줄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어머니까지.  

문제는 이 중 두 사람(이 부분은 스포일러성이 있어 누군지 밝히지 않는다)이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작품 속엔 괴물을 쫓는 추적자가 계속 등장한다. 여기엔 14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끝까지 숨통을 조여가는 한동수 형사와 결국 정말로 서장이 된 후배가 있다. 여담이지만 서장이 직접 뛰면서 범인을 쫓는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뿐 아니라 역시 한 시선 잡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인상적인 호연을 펼쳤지만 스토리는 그 이상의 비중과 시간을 허락치 않았다. 결국엔 하나 둘 희생되는 추적자들. 이 부분에선 감독이나 스탭들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야기 내부를 떠나서, 영화적 측면에서 볼 때. 그러니까 작품세계의 마스터인 감독에게 아쉬운 목소리를 내어 본다. 여기서 감독은 말을 다루는 장기나 체스의 플레이어와도 같다. 게임의 승부를 위해 플레이어는 장기말의 쓰임새를 제대로 부여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모든 말을 다 살릴 순 없다. 그럼 끝까지 지켜야 할 장기말과 잘 쓰고 난 뒤 과감히 버려야 할 장기말을 선택하고 운용해야 한다. 여기서 장기말은 캐릭터를 말한다. 

캐릭터가 호감일 경우, 그 캐릭터가 도중하차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 빈자리를 아쉬워 할 수 밖에 없다. 멋진 퇴장은 분명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 아쉬움 때문에 남은 주연들의 다음 진행이 지장을 받으면 곤란하다. 남은 자들의 이야기에 다시 관객이 집중토록 해야 한다. 그런데 작품은 그 맺고 끊는 점에 있어 다소 약한 면이 있다. 뭐랄까... 연출에 있어서의 아쉬움이랄까. 그리고 그 전에 있어 '이 사람은 좀 더 오래갈 거 같았는데 뜻밖이네'라는, 예상외의 결과도 한 몫했다. 어쩐지 더 오래 남을 것만 같은 느낌을 팍팍 남겼던 것이다. 이건 마치 아나키스트에서의 장동건이 의외의 시간대에서 자취를 지워버린 것을 연상케 한다.(물론 이 작품은 너무도 완벽하게 캐릭터를 지워버렸다)
다시 말해 '그 사람 정말 다시 안 나올까'하는 미련이 몰입도를 깨 버리는 역효과를 만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그 때문에 배정된 비중을 실제보다 넓게 추측케 만들었고, 그 자취를 지우는데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리도 미련이 남았는지 궁금하다. 호연이었지만 그렇다고 '명연기'라고까지 되새길만한 것은 아니었고... 역시 그 캐릭터의 매력, 그리고 이를 잘 살린 배우의 역량이 정답일까. 결국은 연기 좋았다는 이야기다.



공들인 영화, 그러나 음미하려면 관객도 공들여야 하는 영화

역시나 양날의 검이다. 영화를 보면 정성을 담았다는 느낌을 전달받게 된다. 설령 그 결과물이 엉성하더라도 그건 또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영화는 장장 135분의 진짜 장편이다. 실은 그것만으로도 아쉬워 내용을 보강할 추가판을 생각케 한다. 공들인 영화다. 

문제는 관객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딜레마. 추리극이지만 현장이나 시간대가 한정된 작품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장소는 물론이요 시간까지 넘나들며 광활히 펼쳐지는 무대, 여기에 출연인물은 많기도 하다. 처음엔 정신이 없다. 이 사건 저 사건이 얽히면서 따로 노는듯한 인상. 젊은 감독에게 있어선(시사회에서 두 주연 남우와 섰을 때 '셋 중 젤 어리다'는 설명이 나오자 한순간 멈칫했다. 고수 씨 나이가 어케 되지?) 너무도 어려운, 경험이라는 시간의 선물이 필요한 난제였을까.
퍼즐맞추기의 첫부분이 꽤나 어렵다. 의외로 중반 이후부턴 상황이 대충 추려지면서 이해가 쉬워진다. 다시 말해 중반까진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영화를 그냥 편하게 감상하고픈 사람에겐 추천하기가 꺼려진다. 반면 '세븐'처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두뇌회전을 해야 하는 영화를 즐기는 당신이라면 추천할 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4년간 각 캐릭터들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이는 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도 한석규 씨가 언급했던 부분이다.


공소시효 15년은 괴물의 매직넘버

마지막 챕터다.
공소시효 15년. 영화는 이것을 괴물이 양지로 나오기 위해 살아남아야 할 시간제한선으로 삼았다. 공소시효 만료일을 특별한 날로 삼고자 하는 괴물의 평생 숙원, 그리고 그 날짜 안에 심판자와 구원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용사. 양 쪽 모두에 그것은 마법의 봉인이 풀리는 매직넘버. 영화의 소재로서 그리 흔치 않았던, 매력적인 부분이다.
영화가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해 보는 것도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팁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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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다 루저' 파문, 남자들 세계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후폭풍 속 씁쓸함 

KBS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의 9일자 방영분 중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출연자의 발언이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일명 '미수다 루저 발언'은 며칠새 포털 키워드 검색어로 올라 있고 관련게시물은 각지에서 쏟아져 나왔다.

     

 


방송게시판(http://www.kbs.co.kr/2tv/enter/suda/index.html)은 벌집을 건드린 것과 같다. 폐지해 버려라, 루저는 욕에 가깝다, 고소를 하겠다 등 엄청난 마이너스 감정의 폭풍이다.  가만 살펴보면 이는 단순히 가시만 담은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것에 대한 비명이 함께 섞여 있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 거기다 '오만정'까지 나왔다. 물론 제작진은 이같은 후폭풍을 예상했을리 없기에 편집없이 그냥 방송을 내보냈을 터, 그럼 어째서 이처럼 쉽게 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지 그 감정선을 들여다 볼까. 남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더라. 제작진이 간과하고 만 것이, 금도를 넘어선 거였다.

고교 시절의 일이다. 키가 작은 녀석 하나가 있었다. 나한테 와서는 '니 키 몇이고'하고 묻는 거였다.

"이번 신체검사선 174 나오던데."

"...딱 니 만큼만 컸으면 소원이 없겠다"

난 '대신에 넌 날씬하잖냐'고 했고 녀석은 '살이야 빼면 되지'라고 답했다. 알고보니 키는 다이어트와 달리 후천적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비애였다. 막상 그 입장이 아니면 그마저도 의식하지 못함을 그제사 조금은 알았다.

사실 키에 대한 문제는 여성들의 시선에 앞서 남자들 세계에서 서로가 의식하게 만드는 문제다. 여성들 세계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된 일인지 남자들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문제가 장,단신 여부다.

외모에 있어서 잘생기고 못생기고 하는 얼굴의 문제는 남녀 할거 없이 공통된 것인데, 그래도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은 비교적 자유롭지 않느냐고들 한다. 확실히 그 점은 납득할 수가 있는것이 다름아닌 키 재기였다. 되돌아보니 남자들은 가장 먼저 서로를 비교하는 외모의 안건이 얼굴보다 키에 있었다. 제작진이나 발언자는 미처 생각 못했을 남자들의 사정이다.

군대에서의 일이다. 그때 난 정문초소 경계근무가 주 업무였다. '사단의 얼굴'이라며 흙투성이 군인아저씨 답지 않게 말끔한 모습을 중시하는 곳이었다. 군복, 군화가 하나씩 더 지급됐고 근무시엔 자기 총이 아닌 남의 총을 사용하기도 했다. 수많은 출입자를 상대하는데 있어 K-3를 들고 근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키 문제. 당시는 아니었지만 옛날엔 180을 넘지 않으면 차출되지도 않는다는 말이 흘러나오곤 하던 소대였다. 바깥에선 적어도 키가 작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던 나인데, 여기선 '난쟁이 똥자루'라는 조소를 듣고 말았다. 군대라는 특수 상황이 아니었다면 주먹이 나갈만한 모멸이었다. 키가 큰 놈은 이렇듯 키 작은 후임에게 막말해도 되는 특권이 있었다. '아가 그러게 우유 좀 잘 챙겨먹지 뭐 했냐'라고 어이없이 물어오는 이도 있었다. 키가 170센티미터를 못 넘길 것 같은 이가 죽어라 173이라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키는 곧 축복과 열등의 잣대였다. 이번 파문을 단번에 납득할 법한 기억의 환기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기공부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선 '니가 몇센티만 더 컸어도...'라는 말을 교수에게 누차 들었다고 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하고 키 좀 재보자 하며 도토리 키 재듯 서로 일어서는 경우는 학창 시절이 지난 후에도 간간이 보여졌다.

     


여자들에 있어 피부가 권력이라 했던가. 남자들에겐 키가 곧 자존심이요 권력이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예능 프로에서 소위 퀸카라는 이들이 패배자(루저), 오만정이란 말을 담았다. 남자들끼리도 서로 본의던 아니던 상처를 주고 받고, 자위하고 때론 위안받는 민감한 부분을 여자들에게 찔려버렸다. 그것도 매우 아프게.

키 큰 남자가 좋다는 자기 취향을 밝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키 작은 이들에 대한 모욕은 삼갔어야 했다. 지금 문제는 단순히 키 작은 남자가 싫다는 발언 때문이 아니라 노력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게다가 남자들에 있어선 더할나위 없는 프라이드를 욕설과 진배없는 말로 짓밟았다는데 있다. 그리고 이를 미처 생각못한 제작진의 과오가 함께 버무려졌다. 더 큰 문제는 이 프로그램의 특수성. 외국인들의 앞에서 한국인들의 사회상을 함께 논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여러모롤 울컥하게 만드는 민감한 부분들이 있다.

패배자는 자기 노력의 싸움과 경주에서 낙오된 이에게 쓰이는 말이다.(물론 이 역시 본인이 아닌 타인이 내뱉는 것은 매우 실례다) 선천적 문제에다 내단 것은 비난에서 벗어날 여지가 없다. 오만정 떨어진다는 험담은 사람의 외면이 아닌 내면의 일그러짐을 들여다본 후 반성하라는 뜻에서 거울처럼 꺼낼 지탄이건만 정말 생각없이도 내뱉었다. 이번 일이 앞으로도 당분간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할 수 밖에 없다.

작은 고추가 맵다던 옛 말이 무척이나 고마운 배려로 느껴지는 작금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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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규 좋은데 갔을거예요" 이광기 미니홈피 하루새 30만 조문  

 
아들 석규 군을 하루아침에 잃은 연기인 이광기 씨에게 네티즌들의 위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씨 미니홈피(http://www.cyworld.com/lkk2197)는 8일 하루새 위문객 30만명을 넘겼다.

     
 

 


이광기 씨 미니홈피는 8일 오후 10시 40분 현재 36만명이 넘는 투데이 조회객수를 기록했다. 방명록은 1분새 두자리수의 새 글이 추가되고 있고 "힘내세요"(송영자 님), "아드님 좋은 곳으로 갔을꺼예요, 악플 다는 사람은 무시하세요"(박지은 님) 등 수많은 네티즌들이 슬픔에 잠긴 이 씨를 위로하는 중이다. 한 네티즌은 "자신도 얼마전 딸을 잃었기에 남일 같지가 않다"며 아픔을 위로했다.

신종플루 확진에 따라 네티즌들의 안타까운 반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석규 군의 사인은 당초 폐렴이었다가 신종플루 양성 판정에 따라 이로 바뀌었다. 비보는 8일 각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올랐고 인터넷 각지에선 자식을 잃은 이 씨에게 전하는 위로글이 늘고 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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