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현충원에서 본 김대중, 박정희 참배객들간 갈등




13일 서울 국립현충원.

"항상 이렇듯 참배객들이 있나요?"

"글쎄요."

우연찮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일전에 화재사건이 발생하고서 논란이 됐던 그의 묘소는 다시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다. 생전 그를 따르던 이들이 모여들었고 이희호 여사가 몸소 이곳을 찾는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 여기서 몇발자욱 안 떨어진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에도 많은 이들이 있었다. 여러 대의 버스가 그 앞에 서 있던 걸로 봐서 단체로 참배라도 온 모양이다. 양 쪽 다 같은 날 같은 일시에 참배객들이 모여드는 걸 보고서 '평소에도 이 두 전직 대통령 묘소엔 인적이 끊이지 않는가' 궁금했던 거다. 

사실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살아 생전 서로의 인연이 얽히고 섥혔던 두 사람이다. 양쪽을 따르던 이들 역시 지금껏 정파, 지역, 그리고 그 악연의 답습으로 갈등을 빚고 있지 않았던가. 혹여나 얼마 안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마주치다가 마찰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됐다.

"너 뭐라고 했어?"

갑자기 여기서 성난 목소리가 나온다. 묘소 아래 길목으로 시선을 잡아 빼니 웬 남자 둘과 여기 사람들하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 쪽 참배객인 모양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서로 붉으락 푸르락한다. 여기선 "너 방금 뭐라고 하고 지나갔냐"며 언성을 높이고 저기선 "그냥 가만있으면 될 것이지"라고 싸움이 붙는다. 대충. 무슨 소리가 흘러나왔는지는 알것 같다. 저 쪽에선 여기로 올라온다 만다 하고 이 쪽에선 "무식한 것들"이란 욕설이 흐른다. 현충원서 이런식으로도 실랑이가 벌어진다.




묘역 앞에 서 있는 비석. 그의 생전 바람이 오늘따라 더 두드러져 보인다. 김 전대통령은 통일의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는 아직 우리들끼리도 뭉치지 못하는 것 같다. 현충원서 멱살 잡기 일보직전까지 갈등이 치닫는 별 해괴한 쇼가 다 벌어지는 현실이다.




옆에 아는 지인이 그런 말을 한다.

"두 영웅의 이야기를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 건지..."

모른다. 하지만 설마 그 두 영웅이 이렇게 인근에 묻힌 뒤에도 참배객들끼리 승강이 벌이는 걸 바라보고 싶어 하진 않았겠지.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랗고 예쁘다. 구름에 여과된 햇살이 줄기가 되어 빛난다. 밑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풍경이다. 구름은 서로 떨어져 있음으로 저리도 멋진 광경을 펼치는데.

언젠가 아는 정치인 한 사람이 그랬다. "정치인들이 여길 찾아오면 한나라당은 박정희 전대통령 묘소만 참배하고 가고, 민주당은 김대중 전대통령 묘소만 참배하고 가는데, 사실 이게 뭔 짓이냐"라고. 세월이 지나도 안 변하는 모습들, 여기에 하나 있다.




돌아오는 길, 정문 앞엔 현장답사를 온 듯 학생들이 어울리고 있다. 꽃들은 만개했고 신록은 푸르다. 서로가 조화롭다. 기성세대에겐 결여된 무언가가 여기서 해갈하듯 보여진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따져보면 저들과 별로 세대차이 안 나지만, 세대의 어느 선에선가 반드시 끊어야 할 답습의 버릇 하나를 확인하고 돌아간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김대중 전대통령 묘소 화재, 기사는 다 어디갔냐" 네티즌 원성


2일 발생한 김대중 전대통령 묘소 화재가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누가 그랬나"에 앞서 "왜 이 소식이 이렇게 보도가 안 되거나 노출이 안되느냐"는 말부터 꺼내들어 보이는 형국이다.

3일 오전 6시 미디어다음의 사회섹션 최다댓글뉴스 1위부터 5위까지 차트. 이 중엔 3개의 기사가 관련된 보도다. 이중 가장 많은 1600개의 댓글반응을 얻은 것은 뉴시스 보도.(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10&newsid=20100202122808301&p=newsis)

그러나 이 보도는 짤막한 100자 안팎의 단신 기사다. 사진도 이 날 참배에 나섰다 우연히 현장을 발견한 민주당 이계안 서울시장 예비후보 사무실 측이 제공한 것. 내용 역시 후보 측이 발견했다는 것이 골자다. 그나마도 노출 상황이 아쉬운 듯 한 네티즌은 댓글로 "이 기사가 왜 메인에 없느냐"고 묻기도.

두번째는 연합뉴스 보도인데(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01&newsid=20100202133412874&p=yonhap) 경찰이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는 이 소식 역시 짤막하다. 두 기사 모두 반응에 비하면 현장보도에 충실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에 한 네티즌은 "기사가 왜 이리 짧으냐, 전직 대통령 묘에 불이 났다는데 기사가 몇줄이냐"며 불만을 꺼냈다.



그나마 550개 댓글을 얻은 뉴시스 보도(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202192107524&p=newsis&allComment=T)가 발견자와 현충원, 경찰 측을 오가며 상황 전달을 하고 있다. 이 기사의 하단에 집계표기된 관련기사는 11개. 전직대통령 묘소 화재를 생각했을 때 많은 기사량이라 할 수 없다. 

같은 기사를 메인에 노출시킨 네이트닷컴에선(http://news.nate.com/View/20100202n18785&mid=n0809) 최미현 님이 "정작 큰일은 조용하다, 어찌 이럴수 있나요"라고 물어왔고 박지영 님은 "이슈가 왜 안되는거고 난 왜 지금 안거냐"고 물음표를 그었다.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선 와글 님이 "언론이 숨기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319431) 그는 "언론도 인터넷 포털도 내용을 숨기거나 구석에 두고 있다"며 비난했다.

한편 다음 뷰에서는 우연히 오전 현장에 있었다는 기자 블로거 양승관 기자의 블로그 포스팅(http://v.daum.net/link/5679648)이 주목을 끌었다. 운영자는 "기자인 자신이 현장을 다시 확인하려다 제지당했다"고 최초 취재가 여의치 않았음을 토로하기도.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2009년 명암과 굴곡의 10대뉴스 - ① 민주주의의 눈물 
노무현,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1.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500만 추모객의 눈물

지난 5월.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이제 곧 역사 속에서 바라볼 2009년의 사건 중에서도 가장 먼저 꺼내볼 것이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토요일 아침. 그 때부터 기나긴 충격과 파문이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표적수사 논란에 오른 검찰에 "이제 속이 시원하냐"며 맹비난을 퍼부었고, 결국 이 서거정국은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그는 유가족들의 바람에 따라 국민장으로 모셔졌다. 영결식 때도 바람 잘 틈이 없었다. 경복궁 앞에선 가까이 가지 못하는 상황에 추모객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지하철이 끊겼다, 휴대전화도 먹통이다... 슬픔에 찼던 사람들은 숱한 의혹을 꺼내며 추모 열기를 식게 만드려는 정부의 의도가 아니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노제가 열린 서울 광화문과 시청라인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찼다. (관련글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5484)

노란색 물결, 정말이지 따로 발디딜 공간 조차 허락치 않을만큼 많은 이들이 쏟아져나왔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민장 7일 기간동안 다녀간 추모객은 전국 500만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이날 노제에서 '여전히 그의 국민들'은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이름을 외쳤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있을 때 뜻을 몰라줘 미안하다고 사죄의 말과 함께. 뒤늦게 그가 걸어온 '바보 노무현'의 실로 바보같던 원칙주의적 행보는 재평가를 받았다.

몇 달 뒤. 지식채널e로 유명한 김진혁 PD는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는 인간 노무현에 미안해 하는 걸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지못미? (웃음) 살아있었을때, 그 진정성을 몰라줬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인 거죠."

 

 

2.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일기에 남겨진 것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를 접한 김대중 전 대통령. 급기야 6월엔 남북공동선언  기념 연설 중 이를 언급하는 동시에, 현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띄우기에 이른다. 여기엔 노 전대통령을 잃은 것에 대한 자신의 슬픔과, 나아가 현 정부가 걷는 길이 과거 겪은 독재정부의 그것과 다름 없음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는 급격히 쇠약해졌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호흡기 탈부착으로 횡보 상태를 이어가던 김대중 전 대통령. 결국, 8월에 눈을 감고 만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불과 석달 만의 일이다.

6일간의 국장으로 치뤄진 그의 장례. 사람들은 "대통령보다 선생님이란 말이 더 친근한 그 분"이라며 추모했다. 8월 23일, 영결식은 국회에서 치뤄진다. 그가 살아 생전 국민의 전당이길 바라던 그 국회에서.

영상 2도의 유리관 안에 잠든 채로 며칠간 추모객들과 만난 그는 그 날 정말로 작별을 고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국회 앞, 미처 장내로 들어가지 못하는 인파들은 전광판으로 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여기엔 고인이 생전 기록했던 최근의 일기장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그의 일기장 속엔, 정말 짤막한 일기가 한 줄 들어있었다. 홀로 남은 이희호 여사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한달 뒤. 뉴스위크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조국의 변혁을 일궈낸 지도자, 트랜스포머 11인 중 한사람으로 선정했다. 넬슨 만델라, 마거릿 대처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였다.

한 네티즌은 그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애도했다.

"2009년, 두 개의 태양이 졌다."

독재정권 시대의 민주투사 김대중 전 대통령, 가장 민주적인 정부로 평가받는 참여정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이렇듯 지난 10년을 이끈 한국의 두 수장이 눈을 감은 2009년에 떨어져 내린 것은, 민주주의의 눈물이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케냐에서 날아든 검은 천사들의 노래
김대중 전대통령 노벨평화상 9주년 기념식 추모공연 중




9일 서울 63빌딩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고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9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 김대중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중 추모공연에 나선 케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

지라니 합창단은 케냐의 빈민촌 아이들로 구성된 어린이 합창단으로 김대중평화센터가 초청했다. 세계 최대 슬럼가인 케냐 단돌의 고로고초(쓰레기라는 뜻) 지역 극빈층 어린이들로 구성된 팀. 2006년 창단된 이 합창단은 현재 케냐 대통령궁과 나이로비 국립극장에서 공연, 뉴욕과 시카고에서도 공연하며 점차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 날 합창단은 아리랑 환상곡과 A Little Jazz Mass 등 앵콜곡 포함 8곡을 들려줬다. 이 중 아리랑 환상곡과 김 전대통령이 생전 즐겨 불렀다던 도라지타령 일부를 담아봤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100일, 마지막 연설 다시 보니   

 
 
김대중 전대통령이 서거한지 100일이 흘렀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대통령과 달리, 그의 죽음은 이미 예견됐었던 것이기에 그 충격이 덜했다고 한다. 허나 그 직전까지도 삶의 행보를 계속해 보여왔기에 그냥 받아들여지기엔 너무도 뜻밖이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 행보의 대외적인 마지막 발걸음, 많은 이들은 두달 전에 있었던 6.15 기념 연설을 꼽을 것이다. 서거 100일을 맞아, 그의 연설을 다시 들어보았다. 

그의 연설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둘이라, 그 외의 것을 하나로 뭉쳐 나란히 두고 셋으로 의식한 결과다. 하나는 노 전대통령 서거에 부친 이야기, 또 하나는 6.15 기념 연설답게 대북관계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은 민주주의에 대해 꺼지지 않은 소명의식의 표현이다.

이 중 노 전대통령과 대북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지금은 그가 떠난 세상에서, 그가 정부와 국민에게 남긴 충언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이명박 대통령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도처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해 민주주의를 역행시키고 있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에 전국에서 500만이 문상하고 이걸 보더라도 우리 국민의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국민이 걱정하는 건 과거 50년 동안 피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위태한 점을 매우 걱정합니다. 민주주의는 나라의 기본입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죽었습니까. 광주에서도 죽었습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노환으로 세상을 등지기 불과 두달 전 전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게 직접 꺼낸 말.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현 대통령에게 민주주의 역행의 비난이 국민의 심정이요, 곧 자신의 것이기도 함을 밝혔다. 당연히 여당에선 곧장 험한 말이 쏟아져나왔다. 국회의장 또한 이와 같이 했다. 두 달 후, 그가 누운 세브란스 병원에 의장이 문상 왔을 때 이 곳을 지키던 사람들은 품었던 독기를 여지없이 쏟아냈다.

 



 

당시 병원에서 현지 상황을 취재하다 포착했던 순간이다. (http://kwon.newsboy.kr/1378)

"국민의 권력이 무서운지 알아!"라고 외치던 사람, 그리고 묵묵부답의 문상객.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조언과 죽음에도 불구, 세상은 그 드라마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여야정권 교체해서 국민의 정부가 나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그 모든 민주주의적 정치가 계속됐습니다. 우리는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습니다. 이런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는 오랜 정치한 경험으로 감각으로 만일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갖고 말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큰 결단할 것을 바랍니다."

 

여당이 발끈했던 최대의 포인트. 여기서 그는 직접 과거 세 명의 독재자를 언급하는 동시에 이 대통령이 현재와 같은 길을 걷는다면 국민도 이명박 정부도 불행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잊혀져 가던 독재 시대, 불행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또다시 꺼내볼 수 밖에 없는 현 정권, 그 어두운 흑색 사진첩을 꺼내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국민의 모습을 그 말에 담았다. 촛불과 쇠고기 파문, 이어지는 대운하 논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에 이르기까지 쉬지않고 이어진 파동에 던진 전직 대통령의 진담. 그러나 그가 떠난 100일 후의 세상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와 진배없는 미디어법 헌재결정, 대운하로 언제 수로가 확장될 지 모를 4대강 사업이 이어졌고, 그리고 너무나도 폭등해 버린 건강보험료에 "4대강 하려고 이리도 세금을 많이 걷냐"는 피맺힌 서민의 비명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의 바람과 달리 세상은 끊임없이 폭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간곡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제가 마음으로부터 피맺힌 심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가 칼날을 휘두르면서 백수십명 죽이고 그렇게 얼마나 많은 사람 죽였습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그 분들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 행동할 때 누구든지 사람들은 마음 속에 양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행동하면, 그것이 옳은 줄 알면서도 무서우니까, 시끄러우니까 손해보니까, 이렇게 해서 양심을 도피합니다. 그런 국민의 태도 때문에 의롭게 까운 사람들이 죄없이 이 세상을 뜨고 여러가지 수난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의 양심에 합당한 일입니까."

 

국민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가 다시 이런 것이 될 것을, 그는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운명은 끝까지 그를 민주투사로 남게 만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본의 아니게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이것을 국민들에 확장해 해석토록 만들었다. "이젠 남은 여러분이 '이어가라'"라는...

잊고 싶었다. 그저 과거의 역사로만 남기고 싶었다. 우린 그 혜택을 받은 행복한 세대로서, 그 민주주의의 행복을 보장받은 시대의 사람으로서 오로지 개인의 삶과 행복에만 경주하고 싶었다. 더 이상 철창속에서 민주주의의 노래를 부르는 카나리아가 되고 싶진 않았다.

마지막까지 민주투사로 살다 간 그의 유지는, 결국 이 땅의 국민들이 그것을 이어가길 바라는, 그것이었다. 누가 사람들을 투사로 만드는가. 용사로 만드는가.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DJ는 트랜스포머!" 이런 뜻이 있었네?


"뉴스위크에 의하면 김대중 전대통령은 디셉티콘 대장 메가트론으로 밝혀졌다" - 다음아고라 유저 적절한 인간 님

     


  
  순간 놀랐다.  
 


'김대중 트랜스포머'가 검색창에 뜨길래 놀라서 검색하다 하필(?) 이 한줄 게시글부터 보게 됐다. 근데요, 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내가 머리멍청한거야?

아래 모습 떠올리는 거, 죄 맞지? 무식한 건 죄니까. 나만 갈 순 없다. 보는 사람 중 같은 사람들 양심차게 거수. 자수해서 피 보자.

    


  
  ▲ 다음 영화 게시판 트랜스포머 패자의역습 포토 자료 중  
 


언제 봐도 멋져. 저 위용. 자 감상은 잠시 제쳐두시죠. 여기서 저 트랜스포머 대장님은 관련 없습니다.

지난달 서거한 김대중 전대통령이 미국의 저명한 시사지 뉴스위크에서 트랜스포머 11인 중 한사람으로 선정됐다.

...쓰고 나니 더 헷갈린다? 그냥 링크를 건다. 연합뉴스 보도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923185806065&p=yonhap&RIGHT_COMM=R7)

여기서 말하는 트랜스포머는 일단 철자가 'transformer'다. 맞네. 그 영화 철자하고...

그게 아니고.  여기선 '조국 변혁을 이룬 위대한 지도자'란 뜻이다. 뉴스위크지가 선정하는 영예의 전당 쯤 되는 셈이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지도자는 하나같이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거론되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넬슨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덩샤오핑 전 중국 주석,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 등 하나같이 세계현대사를 들여다보면 곧장 나오는, 세계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 이런 인물들과 함께 한국 대통령이 올랐다는게 개인적으로는 기쁘다.

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 지난번 현충원 앞의 어버이들이라던가. (지난 글 참조)

기사에선 트랜스포머를 '임기 중 조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혁을 이뤄낸 이 시대 위대한 지도자'로 정의한다. 호오, 다양한 뜻을 내포한 단어로다. 정의의 사자들로 인식하고 있던 그 이미지, 또 한번 포지티브하게 가슴팍 한 가운데다가 새겨 넣을 수 있게 됐다. 네티즌들도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만 이런 사람 몰라보고 있었냐"며 반문하고 있다.

여튼, 변혁가, 지도자의 트랜스포머... 좋은 이름이다. 그간의 무지를 반성하며 검색 사전을 뒤적인다.

      

  


...역시 안 나오잖아! 내 잘못만은 아니다 뭐!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보수단체 현충원서 김 전대통령 묘소 이장시위, 시민 폭행


10일 오후 서울 국립 현충원 앞.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한 무리의 노인들이 현충원 안에 들어서려 하자 현충원 관계자들이 문을 닫으며 진입을 봉쇄한다. 그러자 노인들에게서 "참배하려 왔는데 왜 걸어잠그냐"며 고성이 터진다. 잠시 문을 열었던 현충원 측, 그러나 다시 들어왔던 이들을 내보내며 다시금 원천봉쇄한다. 

이 때 한 노인이 "삽을 한 백자루쯤 들고 와라"고 누군가에게 말했다. 그리고 전달되기 시작하는 전단지.

김대중 전대통령의 묘소를 이장하고 국장을 취소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를 요구하고자 보수단체들이 시위에 나선 것이었다.

현충원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노인들은 이후 경찰들이 배치되자 이들에게도 "너네가 경찰이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갑자기 유혈상황이 벌어졌다.




한 시민이 노인들 사이에서 집단 구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무방비상태로 주먹에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져선 발길질을 당했다. 어느 블로거기자가 "누가 좀 말리라"고 크게 외쳤고 현충원 관계자들이 그를 도와 안으로 들였다. 가까스로 피신한 남자의 입가엔 유혈이 낭자했다. 흥분한 어느 노인은 우리 취재진에도 욕설을 퍼부으며 위협을 가한다.

"떨어지세요. 행여나 흥분해서 확 문을 밀면 큰일나요."

현충원 관계자 중 한사람이 내게 문에서 좀 더 떨어져 있으라 충고했다.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돌아보니 블로거기자가 폭행당한 시민에게 상황을 묻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말없이 촬영에 응하다 우리를 차례대로 돌아보며 계속 되물어온다.

"아니, 난 그냥 참배하러 왔는데 왜 나를 때리는 거예요?"

그 말 뿐이었다. 아직도 비몽사몽인듯한 표정의 남자. 입에선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함께 있던 블로거 역시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계속 봤는데 저 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목격담을 꺼냈다. 역시나 현장에 있던 현충원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그도 "저 사람은 '하지 말라'는 말만 했을 뿐 별다른 말 없이 맞기만 했다"고 증언한다.

한편 자신을 국립현충원장이라고 밝힌 관계자는 우리에게 "다음에서 오셨냐"고 묻더니 이렇게 말했다.

"보셨죠? 보신 그대로 알려주세요."

그는 "다음에서 오신 분들 옆 문으로 안내해서 보내드려라"며 자리를 지켰다. 아까 우리 취재진에게도 욕설이 날아오던걸 봤던 모양이다.



한편 시위에 나선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후 현충원 앞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묘소 이장 등을 요구하며 묘를 낫으로 파헤치는 퍼포먼스 등을 벌였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김대중 전대통령 마지막일기 중 가장 강렬한 페이지


몹쓸 양반이다.
그 페이지를 읽고선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어제(23일) 국회의사당 앞 영결식에 다녀왔다. 초대장이 없어 들어서지 못했지만 바깥에서 초대받지못한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전광판을 통해 이를 지켜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뜻하지 않게 아이템 하나를 입수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마지막 일기를 엮어낸 작은 포켓북이었다.
 


현장에서 훑어보니 순간순간 시선을 붙드는 대목이 여기저기 있다. 이 중 하나.
독재자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마침표 두 개로 정리돼 있다.
어떤 독재자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주어가 없으니 알 수가 있나.



이미 알려진 "국민들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란 대목. 지난 1월 17일자 일기 중 일부다. 그리고 맞은 편엔 용산참사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앞서 올해 떨어졌던 별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를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본인 역시 올해의 유성 중 하나가 되었다.

한 편에선 그가 평소 아꼈다던 손자 김종대 씨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일기장에서 가장 나의 눈을 오래도록 사로잡은 페이지는 따로 있다.



2월 7일, 저 여백만큼이나 여유로웠을 그의 평화로운 하루.
단 두 줄의 일기였지만 가장 깊게 가슴에 파고드는 파문. 
이 책에서 가장 '일기다웠던 페이지'라고 할까. 자신의, 자기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일기의 본질이라 생각한다면 말이다. 
저 짧은 글로 하루의 일기를 멋지게 채울 수 있는 점에 감탄한다. 그리고.

참 몹쓸 양반일세 그려. 
저 페이지를 읽는 순간, 그리고 읽을 때마다 남겨진 아내는 매번 얼마나 울어야 할까. 

젖어버린 일기장을 가슴에 파묻듯 품고서.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열두컷으로 보는 '인동초 보내는 날'  
 
     



국회 광장 앞에서, 민주당의 노란 메시지를 봤다.

염원을 담은, 하지만 실은 실어나르고 싶지 않았을 메시지. 석달만에 다시 꺼내보인 노란 추모 물결이 바람에 살랑인다.
 


젊은이는 혁명가 체게바라의 티셔츠를 입고, 또다른 한국의 혁명가가 가는 길을 찾아 왔다. 
  
    



초청장이 없으면 영결식장에 갈 수 없다. 그러나 광장 앞에 차려진 전광판과 또다른 헌화대에서 '초대받지 못한 이들의 만가'가 '허락'된다.
  
    

 
지난 대선 도전 때마다 청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했나. 그 표현이, 이제 마지막 가는 길에도 또 한번 쓰이게 됐다.
     
  

     
이희호 여사의 얼굴이 비치는 전광판에 시민들은 시선을 둔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부부의 이별 순간.

         


 
그들의 국민이 모였다. 국회가 국민의 전당이 되길 원하던 그의 바람은 이렇듯 자신의 죽음으로 이뤄진다.  
     
 


저 멀리 건물에 펼쳐진 추모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은 다가갈 수 없나. 경찰이 냅다 다가와선 나를 밀어낸다. 말로만 해선 알아듣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초청장 없으면 못 갑니다."

다른 한 켠의 횡단보도도 여기가 한계다. 다가가려는 이들의 걸음은 여기서 제지된다.

 


하늘은 파랗고 티없이 맑다. 이틀간 드리워졌던 구름의 융단은 이 날 이미 걷혀져 있었다.
     
 


'썬샤인'.

......
  
    


 
드디어 운구차가 나온다. 시민들은 "안녕히 가세요"라고 외쳤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인동초의 마지막 길을 밝히며.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


김 전대통령 빈소 세브란스병원, 뉴스에선 볼 수 없던 모습들 
18, 19일 1박 2일 찰나의 상(狀) 

 
 
1. 추모의 빛

     


  
     
 

18일 밤 9시 24분. 세브란스 병원엔 불꽃이 만개했다. 스무개의 촛불이 피워올린 빛

누가 올려놓은 것인지 모른다. 정문 앞을 밝히는 추모의 불.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바깥에서 조용히 타오른다.

 

2. 97 대선의 경쟁자들, 순간 화합의 장으로

18일 저녁 6시 13분.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도어를 연다.

     
  
    


 


기자들 앞에서 그는 "슬픔을 금할 길 없다"며 "민주주의 거목이 쓰러졌다"고 간단히 심정을 밝혔다. 97년 대선 당시 그와 격전을 벌였던 그다. 당시 여당의 대권주자였던 그는 이제 야당의 총재로서 12년전의 경쟁자를 조문한다.

     
  
     
 


같은 시각, 앞서 조문을 마친 민주노동당의 두 사람이 걸어나왔다. 강기갑 대표와 권영길 의원. 하루가 지난 19일 저녁, 권영길 의원은 아고라 '네티즌과의 대화'에 "당신이 이겼습니다"란 글을 투고한다.(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981708)

97년 당시 김 전대통령과 이회창 대표 등과 함께 대권에 도전했던 그다. 권 의원은 "참으로 야박하게 떠나셨다"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가 승리한다고 하시더니, 국민의 마음이 오늘 당신에게 있다"고 있다고 그의 영면을 빌었다.

경쟁자였고, 네거티브 공세를 벌이기도 하던 이들이 그 '짝'을 잃은 날, 화합의 자리에 섰다.

 

3. 앉았다, 몰려들었다가, 메모 나누다가, 다시 풀썩...

     
  
     
 


이틀 내내 기자들은 정문 앞에 모여 누군가를 기다렸다. 바닥에 앉아 타이핑을 하다가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가도, 바깥에 차량이 서고 누군가가 내려서면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정계 인사나 그 외 유명인사가 등장하면 곧장 몰려든다.

     
  
    


 


목소리 한 번을 듣고자 무릎을 꿇는다. 뒤에 늘어선 카메라 때문. 현장에서 보여지는 일종의 규율이었다. 그 프로의 법칙에 익숙치 못했던 나는 서 있다 등을 한번 '찔렸다'.

     
 


     
 


잠깐의 인터뷰가 끝이 나면, 이들은 한 자리에 모여 메모를 나눈다. 제대로 듣지 못한 이들에게 앞에 있던 이들은 그 내용을 복기시켜준다.

"금할 길이 없고... 그리고?"

"민주주의의 거목이 쓰러졌다..."

행여나 앞다퉈 두 사람의 인사가 겹쳐 들어서면 손이 더 빨라진다. 그것이 끝나면, 모두들 한 숨 돌리더니 다시 여기저기 흩어져 앉은 채 피로한 눈빛을 나눈다. 이틀내내 같은 옷, 구겨진 셔츠 깃, 땀에 젖은 얼굴로 동분서주하는 이도 있다. 교대할 인력이 아쉬운 이들끼리의 커버 플레이. 경쟁자면서도 동료의식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다.

 

4. 일반 조문객들의 야간 행렬 外 무제

     
  
    


 


18일 밤 9시 46분. 일반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길게 늘어진다. 퇴근 후에 찾아온 이들일까. 늦은 시각에도 줄지어 마지막 인사길에 나선다.

     
  
    


 
 


1층 로비에선 사람들이 신문을 통해 비로소 전대통령 서거를 실감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권근택의 오아시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권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