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한명숙에 노무현의 그림자가 버거울 때, 그에게 감탄하는 순간




5월 27일. 서울 종로 토즈에서 이해찬 전 총리와 블로거들의 번개가 있었다. 김진애 민주당 의원이 자리를 함께 하고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도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자리.

후보자가 자리를 떠나고, 이 전 총리와 김 의원이 남아 간담회를 이어갈 때였다.
분위기는 순간 묘하게 흘렀다. 한 블로거가 "사실 불유쾌한 기분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운을 뗀 것. 얼마전, TV토론에서 한 후보의 토론이 실망스러웠다는 거였다. 그는 이에 따른 대안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또다른 참석자도 같은 성토를 했다. "토론 후 후보자 측을 비난하는 상당수는 다름 아닌 나 같은 사람들(야권에 우호적인)"이라며 선대위 측이 스스로 짚고 반성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간담회 종료 후, 김진애 의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토론하는 것과 실무능력이 꼭 비례하진 않으니까"라고 토론 후 아쉬움을 애써 달래보였다. 이에 난 "토론하는 것도 분명 유권자들에 보여주는 능력 중 하나"라며 이 같은 말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님을 밝혔고 김 의원은 "원체 앞에 나서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시라..."며 역시나 아쉬움을 내보였다.

그리고 화제가 잠시 노무현 전대통령으로 흘렀다. 역시나, 노풍과 한명숙은 뗄레야 뗄 수 없었기에. 아울러, TV토론 후 지지층에서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노 전대통령의 토론하고 겹쳐보는 거겠죠."

한명숙에게서 노무현을 보고자하는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선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강단있는 언변, 토론하는 능력을 후보자에게서도 기대하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김 의원은 "그러니까..."하면서 수긍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조금 남달랐다.

"그러니까, 노 전대통령께서 우릴(민주당을) 잘못 길들이셨어요."

김진애 의원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너무나도 앞에 나서서 잘 싸웠기 때문에 도리어 그의 사람들은 그처럼 강하게 맞서는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결국, 때로는 노무현의 그림자가 한명숙 후보에 패널티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거군요."

"그래서 유시민 후보에 대해선 열광들 하잖아요. 토론을 잘 하니까."

'노풍'을 등에 업은 것이 상황에 따라선 도리어 짐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김진애 의원도 수긍해 보였다. 바꿔 말한다면, 그만큼 노무현 전대통령은 토론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김진애 의원 말대로라면 그들에 있어 너무도 강력한 방패이기도 했다. 정작 자신들은 그의 부재와 더불어 자신들에게 그것이 부재함을 한탄할 만치.

이번 선거판에서 노풍을 이야기하고 또 단일화를 통해 '노무현의 아이들'이 야권의 핵으로 떠오르는 걸 보며 매번 느낀다. 떠나갔음에도 그의 그림자가 크다는 것을. 또한 그것이 짐이 되기도 하는 모습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떠난 후에도 매번 돌아보게 되는 그였다. 

한명숙 후보에 있어 노풍은 단순히 순풍으로만 부는 것이 아니라, 검증하고 극복할 과제기도 하다. 물론 토론만은 아닐 것이다. 성패여부에 따라 그 노풍의 성격을 달리할 과제, 그리고 기회 말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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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봉은사에 걸린 권양숙 여사 연등 外
5. 천가지 인간사 만가지 이야기


5번째. 이제사 처음으로 주간에 여는 사진전.

주인은 이제사 매뉴얼을 건드리기 시작했고 사이즈도 VGA서 9M로 습성을 바꾸는 중.
카메라는 더딘 주인 만나 아직도 제 기능 다 발휘못하고 있는 소니 DSC-H50.



부처님 오신날. 서울 조계사.



수천인지 수만인지 갈피 못잡을 단위의 연등이 하늘을 뒤덮었다. 맑게 개이다 못해 가혹할 정도의 햇볕을 완전히 막아주는 연등의 구름.
 



21년전 기억이 떠오른다. 동네 작은 절에서 맞이했던 4월초파일의 새벽. 난 부모님 손을 한 짝씩 맞춰 잡고선 주문했던 연등을 보러 어두컴컴한 산 언덕을 올랐는데, 결국 그 많던 연등 중에서 우리 가족 이름 적힌 그것을 끝내 찾지 못했었다. 너무 많아서 못 찾은 건지 우리 것만 빠진 건지 알 길은 없었다.

몇만원짜리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 때 내 눈엔 이것보다도 그 작은 절의 연등하늘이 더 거대해 보였다. 연등으로 우주가 펼쳐졌던 기억이다.




법요식 개막 직전. 안내할 스님들을 기다리는 아이들.




눈이 매캐할 만치 태우는 향불. 사람들은 한 개피씩 받아다가 불을 올렸다. 너무 맵고 독해 너구리 잡는 듯 했다.




촛불이 아름답게 타오른다.




같은날 오후, 강남 봉은사. 조계사와는 또다른 분위기가 감돈다. 아래에 진 그늘마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백가지 이름, 천가지 인간사, 만가지 이야기. 내가 아는 이름도 있으려나 살피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권양숙 여사의 연등이 내걸려 있었다. 뒤에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와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것도 보인다. 이틀 뒤 남편의 첫 기일을 맞는 영부인. 본래대로라면 남편의 이름이 걸려 있었을...

남편은 '운명이다'라고 했다. 모든 게 운명. 그 한마디로 정의해 버린 떠난 님.
아아,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여.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2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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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노무현이 살아돌아오는 수도권 전장 
한명숙 -유시민 야권연대 성립... 모든 것은 계획대로다?


노의 남자, '모든것은 계획대로다'(?)

 

지난해 11월. 난 처음으로 '시민 유시민'을 봤다. 서울 정동에서 열린 어느 좌담회에서다. 국민참여당이란 말조차 생소했던, 그냥 '친노신당'의 키워드가 서서히 떠오르던 그 때 이미 그는 '야권연대'를 말하고 있었다. (기사 http://kwon.newsboy.kr/1507)

    
 
    

 


그는 이 날, "야당이 한데 모이면 여당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말인즉슨 "야당 중 가장 강한 민주당도 일기토로는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지만 잠재된 것까지 합친 모든 표심에서 '반한나라의 세'는 '한나라의 세'를 압도한다"는 거였다. 여기엔 각 야당으로 분산된 지지세, 즉 모든 야권의 지지표는 물론이요 한나라당을 싫어하지만 야당에도 투표하지 않는 잠재표까지 포함한 거였다. 그는 어디서 확신을 하는지 알수 없지만 이러한 반한나라의 구도를 전체의 '70퍼센트'로 정의했다.

"민주당은 자신들만으로도 제1야당에 걸맞는 성과를 낼 수 있으나 한나라당을 이기진 못한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 등은 노무현도 이명박과 똑같다며 함께 공격하는, 소위 '노명박'이 불렀던 반발을 비롯 군소정당에 그쳐온 그간 전략을 돌아봐야 한다. 연대가 없으면 분산으로 승산없는 싸움만 되풀이된다."

서울시장에 마음을 두는가 싶었던 그는 경기도지사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며칠전, 김진표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야권의 경기도지사 후보가 됐다.

그를 보자니 갑자기 데스노트의 라이토가 꺼낸 명대사가 생각난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다'

순탄했는지 여부는 본인만이 알겠으나 본선게임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는, 정말 그의 계획대로 진행중이다.

 

노의 총리 '바람이 분다'

다음달인 12월, 그는 물론이고 또 한명을 같은 자리서 봤다. '노무현' 하면 떠올리는 또 한명의 사람, 한명숙 전 총리였다.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진보의 미래' 출판기념회장. (기사 http://kwon.newsboy.kr/1536)

권양숙 전 영부인과 동석한 한 전 총리는 이때만 해도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선 사양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를 마다하던 그 때 뇌물의혹 수사가 시작됐고, 어느새인가 그녀는 민주당은 물론이요 전 야권의 한중앙을 관통하는 '지켜야할 키워드'가 되어버렸다. 어쩜 이 때 운명이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선거를 불과 두달 남긴 지난 4월. 무죄판결이 나왔다. 민주당 진영에선 "바람이 분다"며 그녀의 대세론이 나왔다. 결국 5월6일 경선에서 이계안 예비후보를 누르고 민주당의 서울시장 공식후보가 된 그녀. 역시 수락인사말에서 "민주당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야권연대의 필요성을 표현했다.

결국 14일엔 그 바람이 이뤄졌다. 국회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야권 4당은 서울시장 단일후보로 한명숙 후보를 결정지었다.

 

서거 1주년에 드리워진 노무현의 그림자, 선거는 불과 20여일

유시민 후보의 단일후보 확정이 13일, 그리고 한명숙 후보의 단일후보 확정이 14일이었다. 하루 차를 두고 6.2 지방선거의 최대 관심사라 할 수 있는 서울과 경기도에 나란히 두 후보가 야권단일 후보로 오르면서 다시 '그'의 존재감을 느낀다.

정말 그랬다. 현재 각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으로 서로 다른 당에다 적을 두고 있지만 모두가 노무현 칠드런의 핵심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행보에서 착실히 노무현 전대통령의 그림자를 내비춰 왔다.

먼저 유시민 후보. 지난 11월 야권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그는 잠깐 장관재직시절 노 전대통령과의 각별했던 이야기를 꺼내보였다. 그가 각별한 노의 사람임을 내보인 반증이다.

 




 

한명숙 후보는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빈소에 권양숙 전 영부인을 부축하며 함께 등장했었다. 그리고, '진보의 미래' 출판기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함께 손을 맞잡은채 등장했고 또 동석했다.

 






유시민 후보는 야권연대를 언급했던 그날, 성사될 시 각 야당의 표 결집은 물론 투표에 회의적이었던 반여권 정서도 움직이게 될 것을 자신했다. 전자는 연대 성립으로 현실에 바짝 다가갔다. 후자까지 들어맞을지 여부는 투표함을 열어봐야만 안다.

확실한 것은 노무현의 그림자가 서울과 경기에 드리워졌다는 거다. 서거 1주년 열흘 전에 동시 단일화가 이뤄졌고 또 1주기의 열흘 후가 선거다. 죽은 대통령이 선거로 살아돌아오는, 실로 한국 정치사에 있어 보기드문 스토리라인이 아닌가. 수도권에 노풍이 불기 시작했다.

정권심판론 기치 아래 단일화한 야권, 그리고 신(新) 노풍. 과연 죽은 노무현은 이길 것인가.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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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대통령 생가에서 불어오던 바람


"어디서 나는 소리지?"

순간 되돌아봤다. 사라락 하고 스쳐가는 청량한 소리.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가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가.
 




이름모를 높은 나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 2월의 푸른 오후 아래 자그마한 초가는 멋진 감흥을 선사했다. 차가운 공기를 따스히 데워가는 햇살과 바람소리의 이중주. 공감각의 영역은 그렇게 열려간다.



이제사 처음으로 찾은 땅, 바보 노무현이 자라나고 또 묻혀간 그 곳, 김해 봉하마을. 그리고, 여기서 말로만 듣던 그의 생가를 눈에 아로새기는 나. 그 사이에도 바람소리는 끊기지 않는다. 일시의 환청처럼 그렇게 감도는데.

저 너머엔 그가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가 있다. 그 아래, 얼마 전 복원된 그의 생가가 있다.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한국적 경치가 고동소리처럼 툭툭 내 마음을 건드린다.




그가 서거했을 때, 줄지어 이어진 추모의 물길 속에 난 동참하지 못했다. 이후 한글로 님이 "권기자, 봉하가남?"하고 문자를 보내왔을 때도 난 속으로 부러워만 했다. 매달 빠듯하게 통장잔고를 붙들어매는 불쌍한 청춘, 표 값조차 허락치 않는 형편이 눈물짓도록 서글펐던 기억. 이제사 이 곳을 찾게 됐다.




내 카메라는 한옥을 좋아하나 보다. 소니 DSC-H50의 칼짜이스 렌즈는 간만에 짜릿한 비취빛과 은은한 황색을 선명히 그려냈다. 지난해 이순신 장군 고택의 그 자태를 보여줄 때도(http://kwon.newsboy.kr/1162) 그랬건만, 한옥이면 기와집이던 초가삼간이던 차별두지 않고 멋지게 담아내는 녀석이다.



하나 하나 그의 자문으로 재현된 모습들. 소박함.

어릴적 어머니께선 초가집이 좋다고 하셨다. 난 기왓장 있는 집이 더 있어 보이지 않냐고 했었지만 이제 보니 초가도 참 괜찮구나 하고 납득해 버렸다.



방문 너머, 아담한 공간이 보인다. 필라멘트 전구, 그리고...




젊다고 해야 할지, 앳되었다고 해야 할지. 백년가약을 맺던 부부의 그 날 사진이 걸려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은 초가지붕의 그늘과 더불어 보는 이의 영혼에다 뜨거운 입김을 뿜는다. 둘럴보면 볼 수록 정감있는 경치가 아니던가. 그가 다시 고향으로의 회귀를 결정한 이유를 조금씩 이해할 것 같았다.



걸어놓은 고추가 익어가는 광경. 그걸 보는 사람의 감성도 붉게 익어간다. 석양이 깔리면 그 땐 차마 다 담지 못할 감흥에 챙 하고 유리잔 깨어지듯 부서질 것만 같은 감성의 잔.

떠날 채비를 독촉하는 시간. 되돌아보니 바람은 또 한번 인사하듯 불어와 내 뺨을 스쳐 간다. 그렇게 잠깐, 좀 더 초가의 상을 눈동자속에 담았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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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명암과 굴곡의 10대뉴스 - ① 민주주의의 눈물 
노무현,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1.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500만 추모객의 눈물

지난 5월.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이제 곧 역사 속에서 바라볼 2009년의 사건 중에서도 가장 먼저 꺼내볼 것이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토요일 아침. 그 때부터 기나긴 충격과 파문이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표적수사 논란에 오른 검찰에 "이제 속이 시원하냐"며 맹비난을 퍼부었고, 결국 이 서거정국은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그는 유가족들의 바람에 따라 국민장으로 모셔졌다. 영결식 때도 바람 잘 틈이 없었다. 경복궁 앞에선 가까이 가지 못하는 상황에 추모객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지하철이 끊겼다, 휴대전화도 먹통이다... 슬픔에 찼던 사람들은 숱한 의혹을 꺼내며 추모 열기를 식게 만드려는 정부의 의도가 아니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노제가 열린 서울 광화문과 시청라인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찼다. (관련글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5484)

노란색 물결, 정말이지 따로 발디딜 공간 조차 허락치 않을만큼 많은 이들이 쏟아져나왔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민장 7일 기간동안 다녀간 추모객은 전국 500만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이날 노제에서 '여전히 그의 국민들'은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이름을 외쳤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있을 때 뜻을 몰라줘 미안하다고 사죄의 말과 함께. 뒤늦게 그가 걸어온 '바보 노무현'의 실로 바보같던 원칙주의적 행보는 재평가를 받았다.

몇 달 뒤. 지식채널e로 유명한 김진혁 PD는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는 인간 노무현에 미안해 하는 걸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지못미? (웃음) 살아있었을때, 그 진정성을 몰라줬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인 거죠."

 

 

2.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일기에 남겨진 것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를 접한 김대중 전 대통령. 급기야 6월엔 남북공동선언  기념 연설 중 이를 언급하는 동시에, 현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띄우기에 이른다. 여기엔 노 전대통령을 잃은 것에 대한 자신의 슬픔과, 나아가 현 정부가 걷는 길이 과거 겪은 독재정부의 그것과 다름 없음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는 급격히 쇠약해졌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호흡기 탈부착으로 횡보 상태를 이어가던 김대중 전 대통령. 결국, 8월에 눈을 감고 만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불과 석달 만의 일이다.

6일간의 국장으로 치뤄진 그의 장례. 사람들은 "대통령보다 선생님이란 말이 더 친근한 그 분"이라며 추모했다. 8월 23일, 영결식은 국회에서 치뤄진다. 그가 살아 생전 국민의 전당이길 바라던 그 국회에서.

영상 2도의 유리관 안에 잠든 채로 며칠간 추모객들과 만난 그는 그 날 정말로 작별을 고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국회 앞, 미처 장내로 들어가지 못하는 인파들은 전광판으로 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여기엔 고인이 생전 기록했던 최근의 일기장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그의 일기장 속엔, 정말 짤막한 일기가 한 줄 들어있었다. 홀로 남은 이희호 여사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한달 뒤. 뉴스위크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조국의 변혁을 일궈낸 지도자, 트랜스포머 11인 중 한사람으로 선정했다. 넬슨 만델라, 마거릿 대처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였다.

한 네티즌은 그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애도했다.

"2009년, 두 개의 태양이 졌다."

독재정권 시대의 민주투사 김대중 전 대통령, 가장 민주적인 정부로 평가받는 참여정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이렇듯 지난 10년을 이끈 한국의 두 수장이 눈을 감은 2009년에 떨어져 내린 것은, 민주주의의 눈물이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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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신께 참회하며 책을 바칩니다" 축배의 밤에
진보의 미래 출판기념회에서
 


16일 서울 서강대학교. 노무현 전대통령의 '진보의 미래'가 출판기념식을 갖는 자리.

"여사님이 들어오십니다"

사람들이 기립박수로 맞이한다. 권양숙 여사가, 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한 전 총리가 권 여사에게 물을 건네 준다. 다정해 보이는 두사람.
그러고보니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함께 했었던 두 사람이다. 


 




당시 한 전 총리가 권 여사를 부축했었다. "힘내세요"라던 누군가의 외침 속에서 침울하게 들어서던 그녀, 결국은 오늘도, 잠시후에 눈물을 쏟고 만다.




이 날 행사는 스크린 속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이 육성으로 질문을 하면, 함께 했던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어서서 순서대로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야기가 끝나면 노 전대통령도 다시 화면과 목소리로 자신의 답변을 꺼내 보인다.




"버스가 왔을 때, 총칼 들고 들어와 기사고 뭐고 다 밖에 내던져버리고서 버스 몰고 가는거, 그건 공산주의고요, 야 비좁다. 버스에 사람 그만 태워라 우리끼리 가자 하는거, 그게 보수아닙니까. 야 그래도 다 같이 타고 가야지 비좁아도 우리 다 함께 가십시다 기사양반, 김해 손님은 손님도 아이가 하는거, 그게 진보거든요." - 노무현 전 대통령



"지난 10년은, 이례적인 10년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었던 의미있는 10년입니다. 국민의 정부 5년은 외환 위기 극복에 다 보내고, 참여 정부 전반은 카드 문제 해결로 보내고, 후반 되어서야 비로소 구상하던 복지 정책 등을 2030 정책을 통해 펴 볼 수 있었습니다. 2009년 두 분이 서거하셨습니다. 30년 후인 2039년엔 어떤 분이 서거할까요. 그 때도 지금과 같은 그러한 분이 서거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해찬 전 총리




"나는 지금, 역사가 아닌 물길 속을 가르는 것 같은 기분이란 말예요" - 노무현 전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님, 당신은 물길 속을 가르셨던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눈을 마주치던 그 국민들과 지금의 국민들은 이미 같은 국민이 아닙니다. 당신은 진정 의미있는 길을 헤쳐나가셨습니다." - 유시민 전 장관



유시민 전 장관은 답변을 마친 뒤 물병을 땄다. 목을 축일 때 그는 메마른 뭔가를 달래는 소년처럼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권양숙 여사가 마이크 앞에 나선다.
예상했던 일이다. 남편의 얼굴과 목소리가 계속해 맴돌던 1시간.
결국, 눈물을 쏟고야 만다.




"불은 새벽이 되어서야 꺼졌습니다. 봄까지 계속됐습니다. 그래도 얼굴은 밝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책은 쓰여졌고 대통령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습니다... 아직 못한 말들이 책 바깥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 권양숙 여사


미망인의 눈물이 떨어지자 장내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편 잃은 아내의 이야기는 3분간 지속됐고, 끝났을땐 다시 한번 기립박수가 쏟아진다.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가 앞에 나선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권 여사 못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그녀는 담담히 말을 이어간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십니다. 괜찮습니다! 진실은 강합니다. 저는 진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강합니다." - 한명숙 전 총리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킨 노무현의 사람들도 많았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문재인 비서실장 등은 이후 내빈 소개에서야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존재를 찾는다.





"조중동이 암만 어떻게 뭐라 그래도 국민들이 셈만 잘 한다면, 정권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노무현 전 대통령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바칩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당신께, 이 책을 바칩니다." - 나레이션


기념회가 끝나고 식사가 제공될 때. 난 백세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이젠 나도 어른이니까 술을 마셔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지.

두어잔을 마신 뒤, 새 잔을 따라 그의 앞에 들어보였다. 물론 결국엔 내가 마셨지만, 그에게 권하는 한 잔이었다.

"축배할 밤이 아니던가요"

이건 내 말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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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근택


'노 전대통령 재산은 빚이 더 많다?!' 네티즌 화제 
"멋에 죽고 멋에 사는 노간지"

 
 
'노무현 전대통령 재산은  빚 뿐이다?!'

서거 후 반년, 노 전대통령의 재산이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것으로 나왔다는 소식이 다시 한번 화제를 낳고 있다. 국세청은 29일 고 노무현 전대통령 상속 재산에 대해 '빚 3억원이 더 많다'고 신고됐다고 밝혔다.

(관련보도 세계일보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02&newsid=20091130103209803&p=segye)

(중앙일보 http://news.nate.com/view/20091201n00770)

노 전대통령 유족은 지난주 국세청에 상속세 신고를 제출했다. 각각 신고된 내역은 자산 13억, 부채 16억이다. 남겨진 재산은 경남 진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와 인근 임야가 거의 전부. 반면 부채는 사저 건축비 충당을 위한 은행 대출 등이었다. 국세청은 6개월 이내에 신고 내용을 확인, 확정 통보를 하게 된다.

관련보도는 각 포털에서 차트에 올라 30일, 1일 양일간 주목을 끌었다. 1일 오전 현재 네이트닷컴에서 중앙일보 관련보도는 실시간 급상승 관심뉴스 6위에 올라 있다.  베플에 오른 김형준 님이 "아방궁이라 거품물던 한나라당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서거 정국을 표적수사의 결과라는 주장을 내비치는 등 댓글란에선 지난 수사 당시 노 전대통령에 비리 의혹이 제기됐던 것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박영애 님은 "보고 싶어요 노짱"이라고, 황인태 님은 "5000만원짜리 시계를 찬다더니, 자전거 타고 동네 슈퍼에서 담배 피시는 분이 그럴까"라며 혀를 찼다. 못 믿겠다는 의견도 있으나 소수에 그쳤다.

미디어다음에선 세계일보 보도가 최다댓글뉴스에 올랐다. 2600개가 넘는 댓글을 기록 중인 기사 반응을 살펴보면 역시 다수가 "마음 아프다"는 내용.

    



Danny 님과 개미마루 님은 "눈물이 난다"고, 어머니 님은 "그럼 평생 번돈이 마이너스 3억이었냐"며 "
진짜 청렴하시다"고 감탄했다. global 님은 "서거 전까지 불법자금으로 고통당하셨는데 실제로는 이랬다니 안타깝다"고. 또다른 네티즌은 "전두환은 30만원은 있다고 했는데 이 쪽은 빚이 3억원이니 전두환보다 더 청렴한 전직이 나타나셨네"라고 웃지 못할 반응을 꺼내보이기도 했다.

박형철 님은 "멋에 죽고 멋에 사는 노간지"라고 댓글을 남겼다. 죽어서도 화제를 계속 이어가는 '노간지' 열풍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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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지수 '뚜욱'...선진국 좋아하네



이 글은 기사도 아니요, 칼럼이라 부르기도 뭣하다. '블로그틱'한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완전자유양식의 지대에서 붓가는대로 끄적인 진짜 블로그 포스팅.

포털 뉴스홈에서 정치 섹션 중 청와대나 여당 쪽 기사를 읽어보면 많이 인용되는 글자가 이거다.

"선진국"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중대 갈림길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이, 야당이나 여론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현정권에서 주로 쓰는 레퍼토리아니던가.

선진국의 개념이 뭘까. 지엔피? 지디피? 국방력 순위? 최저임금제 수준?

지금 우리나라가 이미 완료형의 '선진국'인지, 제대로 자리매김하려는 현재진행형의 '상위중진국'인지는 우선 제쳐두고요. 지금 우리가 차근차근 상위로 치고 올라가는 상황이 맞는지 어떤지 정도는 제대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난 이 문제의 해답이 의외로 간단하다 생각한다. 국민의 만족도다. 더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바로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의 그것. 서로가 아래의 저 정도 대답을 듣고 나눌 수 있다면 그럭저럭 선방하는 나라 아닐까.

"여전히 흡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반찬을 갖추고 먹고살수 있게 됐지!"

"시험에서 또 떨어졌지만 공정한 경쟁이었고 기회도 많이 있어, 뭐든 열심히 하면 다 이루는 세상 아닌가"

"옆나라 놈들 시비 걸지만 그래도 정부에서 할 말 다하니 속은 시원하네"

"할 말 다 하고 살 수 있잖아. 지금이 5공시절도 아니고..."

너무 소박한가? 그럴수도 있겠다. 특히 첫번째 것. 그리고 사실 저 정도는 다 만족시켜줘야 선진국 운운할 단계 아닌가.

자. 이쯤에서. 난 현정부에 이 기사를 보여주며 진지하게 이렇게 묻고 싶어. "정말 선진국 대열 진입하는 시기 맞나요"하고. 연합뉴스의 관련보도(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01&newsid=20091020231409086&p=yonhap)와 독설닷컴의 (http://poisontongue.sisain.co.kr/1194) 이 글.

그래도 기잣밥 먹는 사람이라 시선이 안 갈 수가 없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하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 현주소가 세계 69위란다.

선방 날린 독설닷컴 님은 정작 독설하지 않는다. 해서 내가 대신 잘은 못하는 독설을 푼다.
무섭다. 혹시라도 175개국 중 69위면 반 뚝 떼어서 상위권 아니냐고 주장할까봐.

중요한건 과거 성적과의 순위 등락인데... 작년 49위보다 22단계 하락이고, 노무현 정부 시절과도 큰 차이가 있다. 2006년 31위, 2007년 39위로 참여정부 시절 30대를 찍던 기록이 2년만에 폭락, 40찍고 60대로...70위의 코앞에 겨우 선 것. 대폭락이다. 

노무현 정권 말기, 기자실에서 인터넷선이 끊긴 걸 두고 각 메이저신문이 '끊어진 언론자유'라며 대서특필하던 것이 2007년. 당시 각 언론사와 네티즌 반응을 취합해 기사를 내던 내 기억에서 기자실통폐합에 순응한건 한겨레 딱 하나였다. 그러나 국경없는 기자회의 잣대에서 한국언론자유의 쇠퇴기는 그 때가 아닌 지금이다. 독설닷컴에 따르면 미네르바 사건, 와이티엔 구속 사건 등이 이번 지수의 주요 원인이다.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보자. 당신은 기자실통폐합 때 언론통제를 몸소 느꼈는가? 빅3 신문사 개혁을 부르짖던 그 남자, 사후 몰라준 '진정성'에 이 시대를 한숨 쉬게 만든 그의 그 작품이 정말 언론탄압이었나?

지금은 어떤가. 다시 기자실 다 원상태로 만들고선 대신 네티즌 여론과 MBC를 미운오리새끼 마냥 보는 걸 두고 저들이 70위 바로 앞까지 떠다밀어버린 것에 불만 토로할 수 있는가. 아님 국경없는기자회도 좌파냐고 묻던가.

세계가 바라보는 언론자유도가 나날이 추락하는 선진국이라니 가히 이슈감 아닌가. 그런 선진국이 어딨나.

다른건 몰라도 인정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진짜 잘 한게 하나 있다. 별의 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할 말 다하도록 언론과 여론의 자유를 보장했다는 거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가 그것을 좌지우지 했던 것은 권력이나 어떠한 힘이 아닌 자신의 목숨이었다. 

만일 그가 오늘 이 곳에 살아있었다면 국경없는기자회가 매긴 대한민국 언론자유 성적표를 보고 뭐라 했을까. 화를 냈을까. 아님 기가 차서 웃어버렸을까. 자기가 만들어낸 선진국 지표의 지대한 업적 하나를 그대로 허물어버린 현정권의 삽질을. 
그리고 그의 울타리를 넘어 험난한 이 시국에 기자질하고 블로그 꾸려가는 내 팔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당최 모르겠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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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십계' 
'진짜 안녕' 노 전대통령 49재에 바친다 

 
 
하나. 이 나라에서 향후 대통령이 될 자, 절대 청빈하라. 비리가 드러나면 죽음으로서 죄를 갚아야 할지니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도덕성에 타격을 입자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대통령은 '그.러.한.자.리'임을. 절대적으로 깨끗해야 할 자리인 바, 탐욕에 물든 자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할 족쇄의 자리임을. 

 

둘. 챔피언 아닌 도전자로

그는 대통령이란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오르고서도 5년 임기 내내 약자로서 살았다. 조선 중앙 동아의 3대 메이저 언론에 줄곧 조소를 당했고 검찰을 스스로 적으로 돌렸다. 때론 자신의 지지기반인 여당에서조차 스스로 등을 돌렸다. 가시밭길의 도전의 나날.

사람들은 그런 그를 무능하다고 조소했다. 그러나 이젠 뒤늦은 짝사랑에 빠졌다. 그는 적어도 권력으로 통치하지 않았음을 이제사 깨닫는다. 한시적으로 허용된 절대강자의 가면을 버린 채 '지금도 약자'임을 드러냈던 그.

그거 아는가. 도전자는 항상 기댈곳 없는 약자임을. 

 

셋. 함부로 고개 숙이지 말라. 고개 숙일 땐 아끼지 말라

미국 대통령을 만나도, 일본 총리를 만나도, 그리고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도 항시 꼿꼿했던 그. 그러나 봉하마을을 찾아온 이름 모를 시민에겐 기꺼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는 인사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넷. 항시 돌아보라. 그대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검찰에 칼을 들이댔다. 우리들, 그런 그를 바보천지라 불렀다.

이제 우린 그 바보천지가 위대한 도전을 했던 게 아닌가 다시 되돌아보고 있다. 이 나라, 역대 대통령 중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바보같은 싸움을. 비열한 싸움과 바보같은 싸움 중 무엇을 하고 싶나. 선택은 자유다.

 

다섯. 큰 것은 네가 결정해도 작은 것은 쉬 결정치 말라

2007 남북 정상선언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에 하루 더 머물다 가라고 권했다.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이 아래에 깔려 있었다.

노무현은 "나보다 더 센데가 두 곳이 있는데..."로 말문을 열었다. 강경한 '노'도, 피동적 '예스'도 아니었다. 쉽게 찾지 못할 돌파구.

상대는 불쾌한 듯 "일국의 대통령이 그거 하나 결정 못하십네까"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큰 것은 내가 결정해도 작은 것은 내가 결정치 못한다"고 답했다. 며칠 후 혹자는 그것을 카운터 펀치라 평했다. "절대권력의 독재를 비판한 그의 완승"이었다고.

 

여섯. 작은 것은 연연하지 말고 내주되 자존심은 내버리지 말라

"인민은 위대하다"

노무현은 남북정상선언 방북 당시 저 말을 방명록에 남겼다. 보수언론은 일제히 이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곧장 반문했다. '인민'이란 말조차 허용치 못하면서 무슨 통일과 화합을 논하며 그들을 끌어안느냐고. 

그러나 저자세는 용납치 않았다. 김영남 상임위원장,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접하며 상대의 기 싸움엔 "그냥 짐 싸서 돌아갈지 모른다"고 화답했다.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때 우린 머릿속을 전환하던가 가슴속을 환기시키던가 하며 스탠바이한다. 그런데 그 중 하나만으로는 쉽지가 않다. 여기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경중을 정확히 잴 괜찮은 추 하나일지도.

 

일곱. 당장의 훈장에 연연하지 말라. 세상의 평가는 한 숨 돌린 뒤 찾아온다

FTA협상 타결. 그러나 쇠고기 협상만큼은 후일 논의로 남겨뒀던 노무현.

정권교체 후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2개월만에 이를 타결시켰다. 곧장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먹게 됐다"며 자신의 치적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결과는 토네이도와 같은 역풍. 국민들은 몇번이고 광장을 채우며 '아웃'을 외쳐댔다. 정운천 농림수산부 장관은 옷을 벗어야 했고 훗날 PD수첩을 고소했다. 반면 박홍수 전 장관은 PD수첩에서 "그건 당신들 욕심이고 희망사항이지..."란 멘트 등으로 당시 상황을 밝히며 쇠고기 공격수로 활약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졌다.

장기말이 퇴장할 땐 둘 중 하나다. 희생양이거나, 게임의 열쇠였거나. 평가는 당신에게 맡긴다.

노무현은 집권 당시 "한게 뭐가 있느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런데 그가 물러난 뒤, 후임자는 "전시행정"이란 정반대 비난에 휩싸였다.

이거 하나만큼은 당신의 답을 듣고 싶다. 진정 행하기 더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여덟. 원망하지 말라

마지막 유언에서 그는 "원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내에 대한 말이었고, 또 세상을 향한 메시지기도 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영결식에서 "당신은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우린 원망하겠다"며 울먹였다. 끊어지지 않는 추모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그 한마디에 담긴 백마디의 무게를 곱씹어보는 것이었다.

 

아홉. 바보라고 인정하는 바보가 되라

바보 노무현. 그가 불리기를 즐겨했던 그 별칭. 융통성없고 한없이 고지식한 신념의 사수, 계산성 제로의 나날을 그는 거기서 위안받았다.

그런데 솔직히 나 바보요 하고 인정하는 바보가 바보 맞긴 한건가?

 

열. 마지막 남은 빈 자리

십계의 마지막 열번째 자리는 채우지 못했다. 나머지 하나는 저마다 다른 하나를 새겨넣는 편이 보다 좋지 않을까.

'간지나게'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비주류', '야인'에서 키워드를 찾을 수도 있겠다. 때론 좋고 나쁘고의 표현에 관대했던, 해서 비난도 감수해야 했던 그 특유의 지도자상을 언급할지 모른다.

노무현의 십계, 그 마지막 계율은 당신이 장식해 주길.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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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잘 잡는다던데...' 고양이와 부엉이는 급호감 동물? 
'다시, 바람이 분다' 콘서트장에서 벌어진 이야기 

 

    
 
21일 서울 성공회대 앞. 노무현 전대통령의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 행사장으로 들어가던 사람들 앞에선 여러가지 아이템이 판매 내지 배포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 시선을 붙잡던 5000원짜리 티셔츠가 있었다.

'2MB 잡는 티셔츠'로 명명된 이 티셔츠는 노란색상에 고양이를 프린팅한 제품. 반응이 좋아 여기저기서 지폐를 꺼내들고 '사이즈 있느냐'를 물어온다. 그간 '요물'이라며 천대받던 고양이가 문화적 변화 등 이유에 애완동물로 각광받고 있다는 소식은 익히 들었지만, 이런 이유로 호감형 동물이 될 줄이야.

학생들은 "2MB 잡는 고양이 티셔츱니다"를 외치며 셔츠 판매를 홍보하고 있었고 이를 바라보던 이들 사이에선 순간 실소가 터져나왔다. 사이즈 하나는 이미 품절돼 곤란해 하기도.

     


  
이를 바라보던 한 무리의 사람들은 말 나온김에 또다른 '동물'을 언급하고 있었다. 

"부엉이가 쥐를 그렇게 잘 잡는다네?"

한 아저씨의 말. 사람들의 귀가 순간 이 곳으로 향한다. 이번엔 부엉이인가. 소형 야생동물에 있어 달밤의 공포로 불리는 그 사냥꾼 말이다.

그런데, 사실 부엉이 역시도 그리 호감형 동물은 아니었다. 과거 손범수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야생 동물 탐사 다큐멘터리의 기억이 떠오른다. 부엉이는 지혜롭고 모성애가 강한 동물로 그려져 왔지만, 한 편으로는 본인(?)에게 있어 제작진에 불쾌함을 나타낼 만치 곤란한 사실도 함께 노출되고 있었다. '지저분한 동물'이란 이미지였다.

'부엉이의 지혜'라는 타이틀로 방영됐던 촬영분은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너무나 임팩트가 강했던 것. 제목은 '지혜'라고 달았건만, 기억에 남는 건 '끔찍하다'란 감상이다. 부엉이가 물고기를 잡아다가 거처에 가져왔는데, 글쎄 먹지 않고 부패할 때까지 그냥 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물고기가 퍽 터져나가며 안에서 벌레들이 득시글대는 영상이 나오자 패널들이 경악하며 입을 손으로 막던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이다. 그 장면을 봤던 한 지인은 시간이 지나 부엉이에 대해 이처럼 회자하기도 했다.

"그렇게 더러운 동물은 태어나 또 본 적이 없어..."

알고보니 부엉이는 먹잇감이 있으면 무턱대고 다 잡아올리는 습성이 있다나.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재물복의 상징으로 대접받기도 한다고. 그치만 역시나, 그 영상은 여러모로 소름이 끼쳤었지.

그 외에도 부엉이는 한국 사회에서 오래도록 흉조로 인식돼 왔다. 불효의 상징으로 불렸고, 역사적 기록에서도 임금이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린 날엔 모든 정사 보고를 듣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젠 '쥐를 잘 잡는다'란 말 한마디로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 됐다.

전대통령의 추모콘서트 앞에서 벌어졌던 이야기. 과거 5공 시절이라면 '국가원수모독죄'가 두려워 술자리 안주거리로도 꺼려졌을 웃지 못할 말들이다. 며칠 전엔 아예 딴지일보가 시국선언 '찍찌리리리릭'을 발표해 네티즌들에 화제가 되기도 했었지. 그치만 당장엔 웃더라도 결국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셔야 하는, 한국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 지도자가 비하의 목적으로 동물에 비유되는건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다. 멀리 볼 거 없이 당장 노 전대통령만 해도 두꺼비, 개구리로 불리지 않았던가. 뭐, 지금도 별 다를 건 없다. 지난번 서울대 시국선언장에 난입한 보수단체에선 '개구리', '강아지가 죽어도 서거라 할거냐' 등의 말이 터져나왔으니까.

그럼에도 '옛날엔 안 그랬나'라고 묻어두기엔 너무 뒷맛이 쓰다. 국민으로서의 욕심때문일지도. 그저, 민심의 불만에 희화적으로 그려지지 않을, 이상적인 군주를 또다시 다음 번에 기약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불가능한 욕심일지도. 그치만 여기저기서 국정을 성토하는 시국선언이 터져나오고 대통령을 쥐로 부르며 '쥐 잡는 동물'이 급호감으로 전환되는 현 상황은 안주거리로 삼기에도 끝맛이 너무도 썼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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