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노 전대통령 재산은 빚이 더 많다?!' 네티즌 화제 
"멋에 죽고 멋에 사는 노간지"

 
 
'노무현 전대통령 재산은  빚 뿐이다?!'

서거 후 반년, 노 전대통령의 재산이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것으로 나왔다는 소식이 다시 한번 화제를 낳고 있다. 국세청은 29일 고 노무현 전대통령 상속 재산에 대해 '빚 3억원이 더 많다'고 신고됐다고 밝혔다.

(관련보도 세계일보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02&newsid=20091130103209803&p=segye)

(중앙일보 http://news.nate.com/view/20091201n00770)

노 전대통령 유족은 지난주 국세청에 상속세 신고를 제출했다. 각각 신고된 내역은 자산 13억, 부채 16억이다. 남겨진 재산은 경남 진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와 인근 임야가 거의 전부. 반면 부채는 사저 건축비 충당을 위한 은행 대출 등이었다. 국세청은 6개월 이내에 신고 내용을 확인, 확정 통보를 하게 된다.

관련보도는 각 포털에서 차트에 올라 30일, 1일 양일간 주목을 끌었다. 1일 오전 현재 네이트닷컴에서 중앙일보 관련보도는 실시간 급상승 관심뉴스 6위에 올라 있다.  베플에 오른 김형준 님이 "아방궁이라 거품물던 한나라당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서거 정국을 표적수사의 결과라는 주장을 내비치는 등 댓글란에선 지난 수사 당시 노 전대통령에 비리 의혹이 제기됐던 것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박영애 님은 "보고 싶어요 노짱"이라고, 황인태 님은 "5000만원짜리 시계를 찬다더니, 자전거 타고 동네 슈퍼에서 담배 피시는 분이 그럴까"라며 혀를 찼다. 못 믿겠다는 의견도 있으나 소수에 그쳤다.

미디어다음에선 세계일보 보도가 최다댓글뉴스에 올랐다. 2600개가 넘는 댓글을 기록 중인 기사 반응을 살펴보면 역시 다수가 "마음 아프다"는 내용.

    



Danny 님과 개미마루 님은 "눈물이 난다"고, 어머니 님은 "그럼 평생 번돈이 마이너스 3억이었냐"며 "
진짜 청렴하시다"고 감탄했다. global 님은 "서거 전까지 불법자금으로 고통당하셨는데 실제로는 이랬다니 안타깝다"고. 또다른 네티즌은 "전두환은 30만원은 있다고 했는데 이 쪽은 빚이 3억원이니 전두환보다 더 청렴한 전직이 나타나셨네"라고 웃지 못할 반응을 꺼내보이기도 했다.

박형철 님은 "멋에 죽고 멋에 사는 노간지"라고 댓글을 남겼다. 죽어서도 화제를 계속 이어가는 '노간지' 열풍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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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길 열라"고 했더니 경찰들 대답은... 
29일 노제 뒤 인도 통행권 놓고 돌발현장 

 
29일 오후 3시. 광화문 교보생명 맞은편 인도. 서거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의 물결이 한차례 지나간 자리지만, 뜻하지 않게 긴장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광화문 앞에서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통하는 길목을 경찰이 통제했고, 이에 시민들이 강하게 통행권을 요구하고 나선 것.

시민들은 "막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한 여성은 "밥 먹으러 레스토랑 가는 길인데 못 가요?"라 물었고 "돌아가라"는 지시에 한 남자는 "아 그러니까 왜 우리가 돌아가야 돼냐고"란 반문을 꺼냈다.

마침 기자 역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 다음 취재가 3시 정각부터 있어 마음이 급한 터였다. 역시 저마다 급한 스케줄이 있는지 쉽게 돌아서지 않고 대치하며 점차 숫자가 불어나는 통행객들. 그런데 경찰의 화답은 이거였다.


결국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터진 욕설과 밀고 나오는 경찰들의 기합소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경찰버스가 완전히 길을 봉쇄했고, 시민들은 "코메디하냐"는 웃음을 남기며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 길을 택했다.

한 시민은 "그렇게 자신이 없냐"며 정부에 조소를 던졌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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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아', 노무현 전대통령의 노제에 낮은 읊조림... 
2009.5.29, 역사 한 페이지에 습작 한줄

 


...어딜 가는 거죠?


 
왜 당신이 가는 거죠?


      
바보라고도 쉽게 부를 수 있고, 사랑한다고도 거리낌없이 부를 수 있는...

대통령을, 이토록 가깝게 느낄 수 있음은 정녕 잠깐의 사치스런 이단이었나요. 이젠, 다신 찾아올 리 없는...
     



알고 있었습니까.


   
당신을 찾는 이들이 이토록 많음을.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그대여. 그래, 이젠 외롭지 않네요.




당신은 왕자였습니다. 살아생전 권위를 따분히 여겨 권좌의 성을 뛰쳐나온 순진한 왕자.

그런데 아하하, 우린 당신이 권력자라는 그 사실 조차 망각했지요. 서로 치고박고 놀다 그렇게 항시 날은 저물지 않았습니까.

죽어서, 이제사 진정한 제왕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제패한 패왕.

그 어떤 철권의 통치자도 항시 굶주려 있는 그 말, '사랑합니다 나의 당신'을 오늘, 당신은 어쩜 이리도 거리서 흔하게 주워담는답니까. 혹시 거기서 웃고 있어요?


    
후회하게 만들지 말아요.


 
더이상, 허공에다 실체없는 당신을 날려보내며 눈물 달래도록 만들지 마요.

몹쓸 짓이니까. 눈물 많은 이 나라 사람들 맘에 더 이상 파문 일으키는 거.


 
안녕, 권력을 버리고, 대신 국민의 품으로 뛰어들었던 바보같은 그대여.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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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뒤에선 지하철 끊기고 둘러 막히고... 
29일 노 전대통령 영결식장 경복궁 앞 씁쓸한 풍경 

 
 
시민 1 "지하철을 끊어? 이런 거지같은 나라가..."

29일 11시 27분. DMB채널로 흘러나오는 노무현 전대통령 영결식에선 한명숙 전 총리의 슬픔 어린 목소리가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경복궁역을 나서는 순간, 역무원들과 이용객들의 마찰음이 들렸다.

"지하철이 끊겼다고요? 별 거지같은 나라가 다 있어."

 
    
사연은 이렇다. 지하철이 경복궁역을 무정차 통과하기 시작한 것. 지하철을 이용하려 내려가려던 시민들은 역무원에게 "근조 리본은 왜 달았냐"고 소리쳤다. 방송에선 '11시 25분 부로 혼잡을 우려해 경복궁역을 무정차 통과하니 안국역으로 돌아가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기자는 딱 막차로 들어온 셈이다. 결국 가는 이 뿐 아니라 오는 이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라 시간이 지난 뒤 지상에선 "우리도 못 내려 빙 돌아서 이제 왔다"는 불만섞인 소리가 터져나왔다.

 

시민 2 "이건 뭐 전광판도 없고..."

     
  
지상에 나온 시민들은 시종일관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경복궁은 저 앞인데 사거리에서 딱 막혔다. 장내에 들어설 순 없어도 조금이나마 곁으로 다가가고 싶건만, 경찰병력이 완전히 통제한 것.

한 시민이 "전광판이라도 설치해 모두가 볼 수 있게 해놓던가, 이게 뭐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검은 정장을 한 남자 하나가 한 전경에게 다가가 물었다.

"전광판 어딨어요?"

확실히, 지하철엔 '초청장 없는 추모객은 장내 입장이 불가하니 대신 인도에 설치된 전광판으로 추도해 달라'는 공고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엔 그나마 없다. 전경의 대답은 '경복궁 내에 있다'였다.

한 순간 벙 쪄 버리는 남자.

"그럼 여기선 확인할 길이 없네?"

 

시민 3 "대통령 가는 길도 못 보게 하는게 대한민국이냐고!"

여기저기서 경찰에 분통을 터뜨리던 시민들. 급기야 한 시민이 울먹이며 욕설을 터뜨렸다.




"대통령 마지막 가는 길도 못 보게 하는 게 대한민국이냐"고 현정부에 욕설을 터뜨리는 시민. 이에 박수소리와 '옳소'라며 동조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 남자는 "왜 차로 가로막냐"며 이해못하겠다고 한 마디를 보탰다.

 

경찰 "청와대로 시위대가 뛰어들어갈까봐..."


     
한 할머니는 갑갑한 마음에 한 경찰 간부에게 물어봤다. "왜 가로막는지, 언제 전대통령이 영결식장을 떠나는지" 등을.

"어차피 시청으로 향하는 행렬은 동문으로 가지 이 쪽 서문으로는 가지 않기에 여기에선 서 있어도 소용없다"고 설명하는 경찰. 그러자 할머니는 물어본다. "그럼 (어차피 이리로 나갈것도 아닌데) 여기서 이렇게 가로막는 이유가 뭐냐"고.

그의 답은...

"청와대로 시위대가 뛰어들어갈까봐 막고 있는거여요."

"????"

옆에서 듣던 다른 할아버지가 "누가 뛰어든닥고 그래?"라며 그만 실소한다. 할머니는 이해를 못하겠다는듯 한참 갸웃거리다 "오래 서 있느라 욕들 보슈"라며 돌아서고 만다.

 

시민 4 "휴대폰도 끊어 놨다!"

여기저기서 "휴대폰이 터지질 않는다"는 외침이 터졌다. 한 여성이 "뭐가 무서워서 전화도 끊어놨냐"고 외쳤고 이에 다른 시민이 "정말?"이라며 자기 휴대폰을 점검해 본다. 다른 여성은 "혼선이 되더라"며 거들었다.

  


   
기자는 본인의 휴대폰을 점검해 봤다.

"......"

결과를 말하자면 '일단 내 것은 된다'였다. 참고로 기종은 싸이언 KH1400, 이동통신사는 KTF. 그런데 기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한 여성 또한 "전화가 끊겼다고들 그러더라고요"라며 같은 질문을 해 오더니 자기 휴대폰을 계속해 점검해 보는 것이었다. 결국 둘의 잠정 결론은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된다"였다.

 

시민 5 "자유당 시절도 이렇진 않았어"

영결식이 거의 마무리되는 순간까지도 옆에선 계속해 지하철도 끊어졌다, 길도 막혔다, 전화도 끊겼다는 성토가 동시다발로 터진다. 마침 YTN의 한 기자는 안의 동료들과 합류하려고 경찰진을 뚫으려다 막히니 육두문자를 쏟았고 상황이 점차 긴장감을 띤다. 상황을 지켜보던 한 노인이 급기야 폭탄 발언은 한다.

"자유당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옆에서 또다른 노인이 맞장구를 친다. "적어도 그땐 이런 식으로 막지는 않았다"는 것. 또다른 시민이 "어찌된게 추모객보다 경찰이 더 많느냐"며 "정부는 그리도 자신이 없느냐"고 비난했다. 봉쇄한 경찰들은 저마다 근조 리본을 달고 있었지만 가로막혀있던 추모객들의 분노를 삭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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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노무현 전대통령에의 진혼곡 
5월 27일 서울 대한문 - 정동거리 

  
3. 노무현 전대통령에의 진혼곡


세번째 전시회를 안타깝게도, 애석한 현장에서 맞이합니다. 2009년 5월 27일,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고 있는 서울 대한문과 정동 거리에서.

작가 레벨 - 사진이란게 4개월만에 일취월장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카메라 스펙 - 아직 주인이 제 성능을 못 꺼내보이는 910만화소 하이엔드 소니 사이버샷 DSC-H50.

 

# 1. 촛불이 무서운가요?     
  



"권기자님 보셨어요? 경찰이 시민을 가로막더니 '촛불은 안 됩니다(못 들어갑니다)'라는 거예요. 그랬더니 그 시민이 글쎄 후욱 하고 불을 꺼보이고는 그대로 들어가더라고요. 하하."

"허허, 참."

우연히 함께 하게 된 동행 블로거와 웃었다. 기자는 건네진 촛불을 오늘만큼은 주저않고 받았다. 무료배포되던 한겨레 21도 함께. 지난 촛불정국 취재에서도 들지 않았던 촛불. 그래서, 서툰 손놀림에 그만 종이컵을 태워먹었다.




정동 교회 앞 거리에서 펼쳐지는 추모 공연의 구슬픈 음색과 맞아 떨어지는 촛농의 눈물.

 

# 2. 못 다 전한 마음을 담아
   


  
대한문 앞. 시청이 열리지 않은 탓에 여기서 분향하는 사람들. 그러나 수시간을 기다리며 묵묵히 인고한다.


     
덕수궁 돌담길을 빙 둘러싼 추모객들의 행렬. 시청역에서 대한문 앞은 물론, 정동 거리를 넘어 저 강북삼성병원 앞까지 끝없이 이어진다.



블로거 'lumi' 님이 뭔가를 적어 보탠다. 못 다 전한 마음을 담아.

 

# 3. 노무현 전대통령에의 진혼곡



시민악대가 추모 거리공연에 나섰다. 박수소리도 조용하다. 조용하게, 구슬프게 민중가요를 부른다. 촛불을 든 어린아이에겐 그저 촛불로 밝허진 모든 시야와 노랫소리가 신기할 따름이다.

 

# 4. 그의 얼굴


     
"밟지 말고 지나가 주세요"

바닥 아래에도 사람들이 그림을 그려놓고 있다. 다신 볼 수 없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활짝 웃는 얼굴. 씁쓸한 미소가 아닌, 환한 미소 말이다.

저 세상에선 이처럼 웃으며 지낼 수 있길 바라며 조금씩 조금씩 작품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 5. 월급이... 안 들어왔어...
     


  
'굿바이 노무현'

29일, 그의 영결식에 맞추어 신문 추모광고를 집행하고자, 사람들의 모금이 모아지고 있었다. 모금액은 한 사람당 1만원.


동행했던 블로거 중 두 사람이 선뜻 지갑을 열어젖혔다. 옆에 서 있던 기자는 그러나... 머뭇거리며 그만 돌아섰다.

'워, 월급이... 아직...'

금전적으로는 영 힘이 안 되는 소인배올시다.

 

# 6. 종이학 선물


어린 소녀가 부모님에게 건네 받은 종이학 하나를 '친구들' 앞에 내려놓는다. 종이학 천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던데, 그들은 무슨 소원을 비는 것일까.


  
봉하마을로 건네질 종이학 선물은, 역시나 '희망' 하나.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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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대통령 추모 서명 20만 돌파 
미디어다음 추모서명 캠페인 닷새간 20만6000명 헌화, 추모게시판도 17만 넘겼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서까지.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에 인터넷에서도 사이버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디어다음의 추모서명 캠페인이 20만명의 헌화객을 받는 등 영결식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추모행렬 페이스가 계속되고 있다.

28일 오후 1시 38분. 미디샤 님이 다음 아고라 추모서명란에 발의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가 20만6090번째 헌화객을 받았다.(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2013&sign_page_no=1) 발의한 날짜는 23일. 닷새만에 20만이 넘는 사이버 조문객들이 그의 앞에 헌화한 것. 서명인들은 그의 영정사진 앞에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바로봄 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맹이 님) 등으로 마지막 가는 길을 밝히고 있다.

미디어다음 메인란 유익한정보검색에 며칠째 노출되고 있는 또다른 추모게시판(http://condolence.media.daum.net/gaia/do/service/read?bbsId=Notice&searchKey=&sortKey=depth&searchValue=&articleId=1&pageIndex=0) 역시 17만명이 넘는 네티즌의 추모글을 받으며 2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오후 1시47분 총 17만3910개의 추모글이 남겨진 가운데 네티즌들은 근조마크 뒤에 "바보같은 노짱"(순수 님) 등으로 그를 추모했다.

묵향 님은 "당신이 조금 더 뻔뻔한 정치인이었다면"이라며 안타까운 속내를 비쳤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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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군대에서 바라봤던 노무현 '02 대선 후보'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쇠굴레' 철원의 겨울바람은 칼끝만큼이나 따갑다. 하물며 육공트럭 뒤에서 맞는 바람은 오죽하랴. 살갗이 빨개지다 못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작업 때문에 나가는 거라면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었을테지. 하지만 마음 속에선 묘한 설레임이 감돌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이 나라 지도자를 뽑는다는 멋진 첫경험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57. 군대에서 바라봤던 노무현 '02 대선 후보'

 

2002년은 여러모로 뜻 깊었던 해다. 월드컵이 있었고, 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해를 살던 고향이 아닌 군대에서 보냈다. 천리한양보다 더 먼, 말로만 듣던 철원에서. (정확히 말하면 철원과 포천의 경계) 하하, 일기예보에서 겨울이면 가장 먼저 뜨는 그 고장이니 말 다 했다. 눈 구경을 2년에 한번씩 하던 부산사람에게 영하 20도 이하는 경이적이기까지 했다. 거기서 3번의 겨울을 난 덕에 이젠 춥다고 하는 서울생활에도 익숙하다.

한국사람에겐 각별한 추억이 담긴 저 해를 철원에서 군인으로 보냈다니 곧장 '불쌍하네'란 동정이 나올 수도 있겠다. 확실히, 월드컵 당시 여러 애환이 있긴 했지. 그 이야긴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지만, 생각해보니 군대에서 바라본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는 사회인들이 겪지못할 또다른 추억이었다. 특히 대통령 선거는 부모님이나, 고향친구들이 아닌 전국팔도에서 모인 군대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치뤘기에 각별한 추억이다.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던 12월, 나는 막 '꺽인' 병장이 됐고 내무실장이 된지는 꽤 됐다. 고달픈 하루살이에서 벗어나 조금은 병영생활 전반을 넓은 시점으로 둘러볼 수 있던 시기다. 군대가 사회의 축소판이라더니, 지역감정에서도 꼭 들어맞더라. '상도'(경상), '라도'(전라), '기도'(경기), '원도'(강원), '청도'(충청) 등으로 서로를 불러대며 훈련 및 작업시 힘자랑을 했던 걸 보면, 확실히 젊은 군인 사이에서도 묘한 지역감정은 있는 모양이다. 투표를 앞두고서도 서로의 출신을 되묻는것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현사회에서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과 비교해보면 거기에선 아무래도 동지애가 우선인 듯, 그땐 그저 '친선게임' 양상으로 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이들에겐 지역감정을 넘어서는 특이한 동감대가 흘렀다. 그건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전대통령에 유리하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겐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이었으니...

"난 자식 군대에 안 보낸 사람은 절대 안 뽑아"

"내 표 못 줘."

선거 이야기만 나오면 만나는 사람마다 이러는 것이었다. 쌉싸름 달콤한 맛을 거의 다 본 병장들도, 한숨 푹푹 나오는 이등병, 일병들도 매한가지였다. 5년전 대선에서도 발목이 잡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아킬레스건은 여기서 더 불거져 보이는 것이었다.

반면 사실 노무현 대선 후보의 모습은 앞서 치뤄진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선전과 겹쳐 보였다. 시간을 조금 'rewind'해서 경선 당시, 노무현 경선 후보는 이인제라는 강력한 적수에 비해 어째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라는 느낌이 다분해 보였다. 지난 대선에서 20%가 넘는 득표율을 과시했고, 웅변에 있어서도 한 카리스마 하는 그에 비해 내가 기억하는 노무현 후보는 매번마다 바보같이 지역텃세를 앞에 두고 출마, 번번이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탈락하는 사람이었고 대선 경험은 전무. 마이너리그(?)에서도 승률이 낮은데 메이저리그 첫 출전에서 경선통과나 가능하겠는가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유명한 '아내를 버리느니 대통령 후보 포기하겠다'는 연설로 일발역전을 시키게 된다. 마침 나는 위병소 근무를 했던터라 간부들이 놓고 가는 사제 일간지(국방일보만 아니면 만사 오케이였다)를 접할 기회가 많았고 거기서 접한 그의 분투기는 드라마와도 같았다. 결국 그는 경선에서 승리, 본선에 나섰고 이는 꼭 경험많은 강팀들 사이에서 주눅들지 않고 거침없이 질주하던 한국팀을 연상케 했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이를 언급하는 건 나 뿐만이 아니더라.

객관적 약자가 기존의 강자들을 차례차례 물리친다는 대하드라마적 스토리는 마침 드라마에서도 등장했으니, 장병들에게 화제였던 SBS 드라마 야인시대였다. 마침 선거 직전, 드라마는 청년 김두한 안재모가 뭉치에 이어 신마적을 깨버리는 데까지 닿았던 걸로 기억한다. 20대초반은 이같은 영웅 스토리가 잘도 먹히는 시대였고, 투표에 있어서도 '아들래미 군대 안보낸 아저씨한텐 표 못 줘'라던 우리에겐 그가 우리의 울분(?)을 대신 풀어줄 대표선수로 여겨졌는지 모르겠다. 누가 여론조사하자고 나선 것도 아닌데, 어느샌가 막사에선 내무실이나 출신지역을 떠나 "그 양반 싫어서라도 그 양반 뽑는다"라던가, "그 사람 뽑을 겁니다"라는 여론이 절로 흘러나왔다.

드라마같은 스토리는 선거 전날 밤까지 지속됐다. 그 때 우리 내무실은 일직사관 허락없이 11시 넘어서까지 TV를 켜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MBC에서 뉴스특보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후보단일화에 조인한 정몽준 후보가 갑자기 지지를 철회한다는 성명을 꺼내는데, 일순간 내무실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정말이지, 막판까지도 응원해주기엔 너무 첩첩산중인 당신이었다.

그 때 후임들의(풀린 군번이라 내무실장을 100일가량 했다) 반응은 기묘했다. '이게뭐야'라던지 반대로 '잘됐다' 같은 반응이 당최 나오질 않고 그저 무거운 침묵만 흐르다 하나둘 취침했다. 누군가 "끝났군"이라 되뇌인 걸로 기억하는데, 바꿔 생각해보면 그를 줄곧 응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그 날의 특보는 드라마의 절정에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수순이 됐다. 

맑고 추웠던 다음날 오후 우리들은 육공트럭을 타고 민가로 행했다. 천막을 씌우지 않아 굉장히 차가운 바람에 덜덜 떨면서 직행했다. 투표에 필요한 서류와 각 후보의 유인홍보물을 출발 전에 받았는지, 동송에 설치된 투표장에서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그 때, 투표사무소 바깥까지 줄줄이 이어졌던 군인들의 광경이다. 다들 처음으로 행사하는 투표권이라서일까, 명령때문에 마지못해 나왔다는 투정은 아무도 흘리지 않았다. 저마다 용지를 꺼내어 '당신의 한표를 절실히 원합니다'라 부탁하는 각 후보들의 프린트물을 유심히 살펴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누구를 뽑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참견할 일도 아니다. 그저, 투표에 신중히 임하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아름다워보였다.

다른 후보들의 홍보물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의 것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후보답게, 노무현 후보는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는 대통령'을 컬러 유인물 속에서 내비치고 있었다. 권위적 대통령 후보의 모습과 완전히 결별한, 털털한 아저씨같은 남자. 생각해보니, 군의 권위적 체계를 2년간 경험한 나에게 있어 이는 상당한 호감을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를 뽑았다. 앞서 선택을 내렸지만, 또 한번 망설이다 주저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박빙의 승부에서 내 표가 사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무래도 좋았다. 사실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전부터 잘 아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내 맘이 가는 사람에게 내 인생의 첫 표를 던져주고 싶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여기 군인들이 정말 입 밖에 내던 것처럼 그에게 표를 줬는지 여부는 자신만이 알 일이다. 하지만 엎치락 뒷치락하는 살얼음판 소식을 접할 때 그들의 반응에선 '아하! 역시나'라 짐작할 법한 표정과 제스처가 읽혔다. 그리고 결말이 나자, 누군가가 웃으며 그랬다. "군대 안 보내고서도 당선됐으면 억울해 뒤져버렸을 것"이라고. 결국 그 해, 우리들의 대통령선거는 대하드라마를 좋아하는 청년이자 울분섞인 군인으로서 맞이한 해피엔딩이었다.

다음날,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내가 처음 동참한 대통령 선거에서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나왔다는 것이 조금은 기뻤나보다. 당일 위병소 당직을 맡은 정훈부 상사는 씨익 웃더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두고 이렇게 말하더라.

"그 양반은, 야인이야. 언제나 야인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야인이란 항상 어둠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거든. 왜 야인시대라고 하는데. 이젠 진짜 야인시대야."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정말 야인으로 살았다. 최고 권력자가 됐음에도 항시 거대한 언론권력과 싸웠고 언제나 강자가 아닌 약자로 지냈다. 그러나 그렇기에 탄핵 시국에선 대중들이 그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이젠 마지막 가는 길을 대중들이 나서 밝혀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 20대를 수년간 뒤흔들었던 야인시대의 추억은 이렇게 드라마처럼 시작해, 드라마처럼 종지부를 찍고 있다. 정말 바보처럼 떠나버린 '바보 노무현'의 2000년대는 나에게 있어 또 하나의 야인시대였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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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홈피도 몸살... "시청광장 개방하라" 
'서울광장 추모 불가'에 25일 "개방하라" 500개 게시글 '우루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대검찰청 홈페이지가 초토화된데 이어 이번엔 서울시청(http://www.seoul.go.kr) 홈페이지가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광장 추모행사 불가 통보에 "개방하라"는 네티즌들의 원성이 자자한 것.

서울시는 25일 민주당의 노 전대통령의 추모를 위한 서울광장 사용허가 신청서에 불가 통보를 냈다.(연합뉴스 보도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03&newsid=20090525122808433&cp=)

서울시는 광장 조성목적이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지원 공간"에 한한다는 조례를 들어 추모행사가 이에 맞지 않음을 설명했다.

기사엔 댓글 폭탄이 쏟아졌다. 업데이트 3시간도 지나지 않아 해당 뉴스게시판엔 6000개의 의견이 기록되는 중. 비난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 네티즌은 아예 서울시청 홈페이지 주소를 걸어 놨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시청 홈페이지는 이번 불가방침이 나온 후 이를 성토하는 게시글을 자유게시판에서 25일 하루동안(오후 3시 현재) 500여개가량 받고 있다.


 
김현정 님은 "서울시청은 시민의 것"이라며 "가는 길 편히 보낼 수 있게 개방해 달라"고 시장에게 "대인배의 모습"을 부탁하고 나섰다. 또다른 시민은 "이런게 대통령님께서 명한 예우냐"고 반문했고 "다른 분도 아니고 전직 대통령이시다"며 이해못하겠다는 반응도 있다.

권오승 님은 "왜 불허하는지 밝히시라"며 "먼 미래를 보고 시정하라"고 밝혔다. 회원가입을 해야 글을 쓸 수 있지만 "한마디 쓰려 가입했다"며 밝히는 이가 늘어나는 등 계속해서 불어나는 상황. 한편에선 지난 6월 촛불정국 당시 논란이 됐던 HID의 추모제를 언급하며 형평성에 맞지 않음을 지적하는 비난도 계속해 이어지고 있다. 유인섭 님은 "그 단체의 추모행사와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추모행사가 다른점은 무엇인가요?"라며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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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노무현 전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23일 오후 5시. 포털 다음이 오늘 서거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메인 상단을 모노컬러로 바꿔 달았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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